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종종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 주님의 물음을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하느님을 누구라고 고백하며 살고 있을까?
하느님과의 첫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어린 시절, 군인이셨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공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성무대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기꺼이 성당에 다녔던 가장 큰 이유는 과자 때문이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나눠 주는 과자와 빵은 어린아이에게는 꽤 지루하고 고단했던 미사를 끝까지 인내하게 해 줬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인고 끝에 얻어 낸 과자를 먹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만약 과자를 집어 먹던 어린 제 앞에 갑자기 하느님께서 나타나셔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면 단번에 대답했을 겁니다. “하느님요? 하느님은 과자예요!”
다 큰 어른이 돼 그때의 유치한 고백을 떠올리며 피식 웃습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니 정말로 하느님은 과자가 돼 와 주셨구나 싶습니다. 아름다운 성가와 체계적인 교리, 멋진 강론으로 “이게 나다!” 하고 당신을 소개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게 다가오셨습니다. 맛있는 과자로, 폭신폭신한 빵으로 하느님은 어린아이의 수준에 맞춰 당신이 누구신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눈높이에 맞춰 사랑을 고백하셨습니다. 하느님은 과자라는 제 나름의 정의는 이제 와 하느님의 눈높이 사랑을 고백하는 말이 됐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웃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요. 때론 유치해도 어린아이를 만날 때는 그가 좋아하는 과자가 돼 줘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다짐했을 때는 먼저 그가 사는 영역에 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그가 평소에 먹던 것을 함께 먹고,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그가 사랑하는 것을 함께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사람이 되신 하느님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먼저 상대방처럼 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내 생각과 나의 삶과 지위, 선호를 앞세운 채 내게 맡겨진 이웃을 사랑하려 하는지요.
어느새 2025년이 지고 새로운 해가 왔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합니다. 군에는 참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군대는 여러 지역에서 온 나이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계급과 다채로운 병과에서 생활하는 집단입니다. 이러한 점이 때론 저를 힘들게 합니다. 이전에는 같은 종교와 학교, 취미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모여 어울렸습니다. 여기서는 하루하루가 낯설고 만나야 하는 많은 사람이 저와 다릅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가 맞춰 주길 바라거나 사람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기보다 그들의 영역을 피해 다니곤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길 포기했던 적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반성하고 반성한 만큼 새로운 한 해의 목표를 다짐해 봅니다. 올해는 여러 사람의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사랑이 돼 주겠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올 한 해,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나요? 2026년에는 그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렵니까? 참되고 올바른 사랑은 나와 이웃에게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맡겨진 많은 사람을 참되게 사랑해 지난해보다 더욱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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