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예술 - 2026년 패션 키워드
권위 버리고 실용성 기준에 충실한 ‘모던 유니폼’
검증된 슈트 실루엣으로 회귀하는 ‘레트로 클래식’
윤곽의 구조화, 올해 주도할 패션 키워드 떠올라
파격 아닌 클래식의 재해석…옷장 한번 들여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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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패션 브랜드들은 각기 다른 스타일을 대중 앞에 내놓고 있다. 이번에는 2026년을 주도할 패션 스타일 키워드의 특징과 그 역사적 맥락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업계 발표에 따르면 올해 유행할 패션 키워드는 모던 유니폼·윤곽 구조화·비순응적 탈출 욕구·레트로 클래식이다. 2026년 키워드는 대부분 서구사회에서 모더니티(modernity)가 본격적으로 발아하기 시작한 18세기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 등장한 복식 경향에 뿌리를 둔다.
먼저 ‘모던 유니폼’은 장식적 유행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스타일이다. 이는 ‘새로움’보다는 ‘확실함’을 전제로 한다. 제복 같은 옷은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환경에서 개성을 드러내기보다 신뢰를 전달하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모던 유니폼의 기원은 18세기 말~19세기 초 근대 국가의 형성과 함께 나타난 제복 표준화에 있다. 군복·관복·직업복은 더 이상 신분을 장식적으로 드러내는 옷이 아니며 누가 어떤 분야의 업무를 담당하는지를 알려주는 표식이었다. 색상, 재단, 착용 방식이 규격화되며 옷은 개인의 취향보다 역할에 봉사하게 된다. 이때부터 제복은 권위의 과시가 아니라 질서와 신뢰의 표식이 됐다. 이후 이러한 유니폼은 대중화돼 하나의 일상복으로 자리잡았다.
트렌치코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고밀도 조직의 개버딘 원단으로 만들어진 트렌치코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방수효과와 활동성을 고려한 디자인을 더해 참호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됐다. 그러나 전쟁 이후 도시의 일상 속에서 트렌치코트는 ‘믿음직하고 편한 외투’로 자리매김했다.
이 흐름을 가장 일관되게 보여주는 브랜드는 버버리(Burberry)다. 버버리의 ‘켄싱턴 트렌치코트’와 ‘웨스트민스터 트렌치코트’는 군용 트렌치의 견장, 벨트, 건 플랩 등의 요소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일상복으로 정착시킨 모델이다.
오늘날 모던 유니폼은 더 이상 특별히 위압적인 권위를 지향하지 않는다. 대신 ‘실용성’이라는 기준에 충실하다. 튀지 않되 흐리지 않고 과시하지 않되 불안해 보이지 않는 외형은 스타일보다는 ‘확실성’에 기반을 둔다.
‘윤곽 구조화’는 루스핏을 느슨한 여백의 윤곽으로 흘러내리게 두지 않고 일정 형태를 유지하도록 설계한 스타일이다. 겉으론 여유 있어 보이지만 특정 곡선과 비율을 정확히 유지한다.
‘보디 컨셔스 라인’으로 불리는 이 스타일은 18세기 코르셋에서 출발한다. 당시 이 코르셋은 고래수염, 끈, 패널을 조합해 상체 형태를 안정적으로 설계하는 공학 기술의 집약이었다. 보이지 않는 내부 구조가 외형을 결정했고, 착용자는 코르셋으로 몸매를 보정했다. 19세기 재단술은 이 논리를 코르셋을 벗어나 의복 전반으로 확장했다. 다트와 절개선은 장식을 대신해 형태를 만들었다. 20세기 들어 인터페이싱과 본딩이 도입되면서 원단 안쪽에서 장력을 분산하고 선을 유지하는 방식이 훨씬 정교해졌다. 착용자의 윤곽은 겉감이 아니라 내부 공정에서 결정된다.
이 흐름 속에서 스트레이트 팬츠와 스트럭처럴 재킷이 등장했다. 스트레이트 팬츠는 허벅지부터 밑단까지 동일한 라인을 유지하며 스트럭처럴 재킷은 어깨와 허리를 내부 패턴으로 고정한다. 이런 재킷과 팬츠는 몸의 굴곡을 드러내지 않아도 윤곽을 명확하게 한다.
이 키워드를 가장 직접적으로 구현하는 사례는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아워글래스 재킷’과 ‘스트레이트레그 테일러드 트라우저스’다. 전자는 어깨와 허리, 엉덩이를 내부 구조로 설계해 외형을 고정한다. 장식은 거의 없으며 실루엣을 강조한다. 후자는 동일한 원리로 각선(脚線)을 유지한다.
‘비순응적 탈출 욕구’는 반복되는 일상과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옷이 더 많은 신호를 보내지 않도록 선택하는 경향을 드러내는 스타일 키워드다. 놈 코어, ‘꾸안꾸 스타일’ 등 최근 젊은 세대는 특징적인 옷을 통해 아이덴티티를 표명하기보다 주장하지 않는 스타일로 주장이 된다는 점, 요컨대 이 스타일은 주장보다 회피에 가깝다.
산업화 이후 복식은 주기적으로 간결해졌다. 기성 장인이 봉제한 의복의 과다한 장식에 피로를 느낀 대중은 점차 장식을 줄인 양산형 스타일 의복을 따랐다. 이 변화는 생산 방식의 유행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관리 방식이 바뀐 결과였다. 기존 옷이 복잡할수록 선택과 해석 비용이 증가했지만 단순화는 그 비용을 낮췄다.
최근 흐름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사회적 긴장을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복식은 이 모든 사회 양상을 반영한다. 핵심은 ‘소음 제거’다. 로고와 장식, 불필요한 선을 줄여 시각적인 자극을 지양한다. 따라서 색과 소재, 실루엣이 중심이 된다. 밝고 중성적인 색은 조명 변화에 안정적으로 대응한다. 표면이 매끈한 원단은 접힘과 늘어짐을 통제한다. 패턴보다 중량과 드레이프가 외형을 결정한다. 이 정서를 색으로 반영한 사례가 팬톤(Panton)의 올해의 컬러 ‘클라우드 댄서(Cloud Dancer. Panton 11-4201)’다. 과장 없는 밝기와 낮은 채도, 공기를 머금은 듯한 이 뉴트럴 컬러는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불확실한 경제 상황을 실존주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향의 대표적인 브랜드는 COS다. 미니멀 티셔츠는 로고와 장식을 배제한 채 원단과 패턴만으로 완성도를 유지하고, ‘와이드레그 테일러드 트라우저스’는 과장된 핏을 제거했다. 옷이 말하지 않을수록 일상이 덜 피로하다는 철학이 엿보인다.
‘레트로 클래식’은 과거 양식을 차용하는 태도가 아니라 이미 검증된 슈트 윤곽으로 되돌아가는 선택이다. 2026년 다시 1980년대적 슈트가 호출되는 맥락은 앞서 언급한 모던 유니폼과 같다.
위엄이나 지성, 권위 등을 느끼게 하는 1980년대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은 금융과 관료 사회가 요구한 규율이었다. 넓은 어깨, 분명한 허리, 직선 재단은 직위와 판단을 외형으로 전달했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19세기 테일러드 슈트에서 이 윤곽을 찾을 수 있는데 어깨 패드, 다트와 절개선은 신체를 과장하지 않고 비율을 단정하게 조정했다. 다만 오늘날 레트로 클래식은 과시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유틸리티와 판타지가 동시에 공존하기에 슈트는 우선 업무 환경에 대응하며 그 기반 위에서 이상적인 윤곽을 그릴 뿐이다.
이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는 생로랑(Saint Laurent)의 파워 테일러드 재킷과 스트럭처럴 슈트 재킷이다. 전자는 19세기 슈트 구조를 유지한 채 1980년대 윤곽으로 조정하며, 후자는 어깨와 라펠 각도로 중심을 세웠다.
2026년 패션은 파격적인 시도를 겨루지 않는다. 다만 이미 실존해온 형식을 구조 잡힌 방식으로 다시 재해석해 신뢰 가능한 외형을 제시한다. 옷장에 이런 외투나 슈트가 있다면 한 번쯤 조용히 걸쳐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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