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꼭 교실이 있어야만 되는 건 아니다. 책상과 의자가 없어도 배울 수 있는 데가 있다. ‘길 위의 학교’다. 프랑스 언론인 출신 베르나르 올리비에도 걷기 여행을 기록한 책에서 이렇게 술회한 바 있다.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던 올리비에는 은퇴 후 평생 반려자였던 아내를 떠나보냈다. 자녀들도 독립해 떠나가고, 은퇴 이후 찾아온 고독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그는 스페인 산티아고 800㎞ 순례길을 걸으며 걷기의 치유력을 발견한다. 약 두 달간에 걸친 장도를 마친 뒤 걷기의 매력과 성찰을 경험했다. 더 오래, 더 멀리 걸어 보기 위해 실크로드 종단을 결심한다.
유럽의 관문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중동 이란을 거쳐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위구르 지역을 지나 시안까지 약 4년에 걸쳐 1만2000㎞를 걸었다. 실크로드는 기원전 중국의 서역 원정부터 동서를 잇는 비단무역이 활발했던 장구한 역사를 가진 교역로다.
실크로드는 올리비에가 현역으로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것을 배운 여정이다. 인간적인 만남의 연속이었다.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은 낯선 여행자를 순수한 마음으로 환대했다. 소박하고 진실한 모습을 보여 주며 인간을 향한 신뢰와 따뜻함을 일깨워 줬다. 돈과 명예를 좇아 숨 가쁘게 살았던 과거의 삶을 돌아보고, 오직 두 발과 배낭만으로 하루하루를 걷는 단순한 삶에서 진정한 기쁨과 평온을 발견한다. 책에서만 봐 왔던 역사의 현장을 몸소 지나치면서 만나는 유적들을 통해 역사적 배경을 되짚어 보는 문화적 즐거움도 얻는다.
시련도 있었다. 튀르키예에서 불순분자 외국인으로 오인받아 구금되는 일도 겪었다. 또 인적 없는 시골길에서 들개의 공격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건강의 변화와 질병으로 여정을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시련을 이겨 내고 시안에 도착하며 대장정을 마친다. 걷는다는 것은 육체적인 운동만을 위한 게 아니라 위대한 정신적 운동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증명했다. 올리비에는 인생의 속도에 지친 현대인에게 느림의 미학을 멋지게 선사했다.
걷기는 정신적 사유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최고의 행동이다. 걷기는 단순한 운동수단이 아니라 사상과 창조의 원천으로 여겼던 예술가와 철학자가 많은 걸 보면 예찬의 의미를 알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나는 걸을 때만 명상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고 할 정도로 걷기 예찬론자였다. 프리드리히 니체도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걷지 않고 머리로만 짜낸 생각은 믿지 말라”고도 했다. 이마누엘 칸트는 마을 사람들이 그의 산책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에게 산책은 ‘엄격한 사유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의식’이었다.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경우 걷기는 자연 속으로 침잠하며 야성을 회복하는 영적 활동이라고 표현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W. 워즈워스는 평생 28만㎞를 걸었다고 술회할 만큼 그의 시는 걸으면서 지어졌다고 한다. 프랑스의 천재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란 별명을 가졌다. 별명대로 끊임없이 방랑하며 시적 언어를 승화시켰다. 우리나라 소설가 김훈도 “길 위에서 문장을 줍는다”고 가세했다.
며칠 전 뉴스에 나온 튀르키예 남부 안탈리아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양치기로 살아가고 있는 테크타스 할머니. 이 현역 양치기의 나이는 96세다. “저는 산을 정말 사랑하고, 이렇게 산속을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인터뷰에서도 또랑또랑한 말투에 생기가 넘친다. 걷기는 건강과 사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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