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곁에, 예술: 선 넘은 미술 ① - 선(線)
얼마 전 차선을 이리저리 침범하는 자동차를 보며 정해진 선을 잘 지키는 게 도로 위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을 했다. 선만 잘 지켜도 서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선 넘었다, 선 지켜라, 선 그었다’ 등 ‘선’에 관한 말을 자주 사용한다.
선은 국가의 경계를 나누는 경계선이나 도로 위 운전자들이 넘나드는 차선처럼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예의나 규칙, 적당한 관계 유지를 위한 경계를 암시적으로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심리적·사회적·도덕적 선들이 존재하며 보이지 않는 경계를 ‘선’이라는 단어를 통해 은유한다.
동시에 선은 어떤 연결 관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도로 위 차선이 지도를 통해 보면 여러 갈래의 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며 전체적인 모양을 만들어 내는 직조의 과정처럼 선은 교차하고 이어지며 새로운 구조와 관계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미술에서 선은 어떤 의미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하얀 도화지 위에 연필이 움직이며 그어지는 선에 대한 이미지다. 미술에서 선은 기본적인 조형 요소의 하나다. 점이 이어져 선이 되고, 선들이 만나 면이 되는 등 모든 형태를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 중의 하나가 선이다. 조형 요소로서 선은 점들을 연결하는 동시에 면들을 나누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선은 경계를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연결의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미술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무엇일까. 미술(美術)이 아름다움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아름답지 않은 미술은 선을 넘은 미술일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기준 자체가 주관적이며 상대적인 가치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선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의 역사』라는 방대한 저서를 통해 ‘미’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설명한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미학자, 비평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이후 『추의 역사』를 통해 미와 반대되는 ‘추’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탐구했다. 에코는 시대마다 미의 기준이 달랐듯이 추의 기준 또한 달랐으며, 어떤 시대의 추함이 다른 시대에는 아름다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말한다. 추는 단순히 미의 반대 개념이라 할 수 없으며 추 또한 미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코가 책에서 예로 들어 설명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현대미술은 특히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인체의 비례나 질서, 균형을 통해 아름다움의 기준을 만들었던 고대 미술과 달리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조차 모호하며 미와 추처럼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회색지대들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아름다움도 추함도 아닌 그 경계를 벗어난 현대미술은 장르적인 차원에서도 선을 넘어 확장됐다. 캔버스라는 틀과 정지된 시간성에서 벗어나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 작품이 제작되고 조각은 육중한 무게감을 지닌 채 특정 장소에 고정돼 있는 대신 움직임을 갖거나 바람 불면 날아갈 것처럼 가볍게 만들어지며 사람의 움직임과 행위 그 자체가 예술이 된다. 소리와 냄새 등 비물질적인 요소를 활용한 작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사람의 손이 아닌 인공지능(AI)이 만든 작품의 윤리적 논쟁까지 펼쳐진다. 2016년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 프로젝트에서는 17세기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을 학습한 AI가 원작과 흡사한 초상화를 재현해 화제가 됐다. 붓터치와 질감, 명암까지 정교하게 구현된 이 작품은 과연 기술과 만난 미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질문하게 한다. 인간의 고유 활동이라 여겨졌던 예술 창작의 영역이 과연 인간만의 것이라고 선을 그을 수 있을까.
나아가 미술은 고정된 의미, 제한적 범위에서 벗어나 무용,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매체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미술관 또한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실 외에 영화관, 미디어랩, 다원공간 등을 통해 탈장르, 다매체, 기술과의 결합 등 확장된 현대미술을 포괄하며 미술관이 단순히 미술 작품을 전시해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와 배움의 공간으로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선 넘은 미술은 어디에나 있다.
한편 20세기 중반 이후 통섭, 다학제, 융합 등 학문 사이의 경계를 넘는 것이 강조됐다. 이는 현대사회의 복잡한 문제 해결에 있어 다양한 관점과 시각이 만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영국의 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특히 ‘선’을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인류학, 예술, 생태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며 ‘선 인류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것은 인간의 삶과 세계를 선의 흐름과 연결로 이해하려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그는 『라인스(Lines)』라는 책을 통해 선을 단순히 경계가 아닌, 삶의 흐름과 관계를 드러내는 움직임으로 이해하고 선이 드로잉, 걷기, 쓰기 등 다양한 인간의 활동과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또한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 『조응』 등의 책을 연이어 펴내며 인간과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조응’이라 여기고, 선은 이러한 조응의 흔적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는 선이라는 주제를 융합적으로 사유하며 경계를 해체하고, 살아 있는 학습으로서 세계를 경험하는 것에 관해 질문한다.
지난해 11월, 잉골드는 리움미술관이 기획한 프로그램의 강연자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능동태와 수동태라는 이분법적 구분 사이에서 ‘중동태(middle voice)’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서로 배제하지 않고 함께 관계를 맺으며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강연 외에 땅, 식물, 공기를 주제로 한 워크숍을 직접 진행하면서 움직이며 만드는 동적인 선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실천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잉골드가 말하는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지는 선, 연결의 선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은 고정된 존재가 아닌 주변 환경, 조건과 함께 변화하고 움직이며 선을 만들어 나가는 존재다. 그리고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변화하는 선은 경계를 넘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선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활동을 담고 있는 미술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선 넘은 미술’은 경계를 넘어 확장된 현대미술의 모습을 통해 함께 선을 만들고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 미술이 어떤 분야와 관계를 맺으며 나아가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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