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황금 함대와 K방산의 미래

입력 2026. 01. 14   15:38
업데이트 2026. 01. 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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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말 최신예 함정들로 구성된 ‘황금 함대(Golden Fleet)’ 구상을 발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사라진 거대 전함을 부활하고 여기에 극초음속미사일 등 온갖 화력을 배치해 적을 압도하겠다는 것이다. 황금 함대는 작전적 유용성 논란 등을 차치하고 세계 해군의 과거와 미래를 살펴보는 계기가 된다.

이 구상은 100여 년 전 미국의 거대한 ‘백색 함대(Great White Fleet)’를 연상시킨다. 이는 힘의 외교를 추구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로 창설돼 세계를 순항하며 미국의 강대국 부상을 과시했다. 군함의 막강한 위력이 평화의 상징인 흰색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함대는 해양전략가 앨프리드 머핸의 제안이 발판이 됐다. 머핸의 주장이 처음부터 중용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럽이 먼저 채용했다. 그의 꿈은 훗날의 대통령 루스벨트가 해군 차관보로 임명되고야 빛을 봤다. 이렇듯 미국도 처음부터 해양제국은 아니었다. 19세기 초만 해도 자국 상선을 해적들로부터 지키는 것조차 버거웠다. 독립전쟁 승리도 프랑스가 영국 함대를 격파하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정설에 가깝다.

세계 최대의 전함 야마토를 건조하며 미국에 맞섰던 일본도 시작은 미약했다. 일본의 야망을 깨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미 해군 매슈 페리 제독이었다. 그는 1853년 선체를 검게 칠한 ‘흑선’을 타고 나타나 함포를 쏘며 개항을 요구했다. 일본인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쿠로후네(黑船) 사건’으로 불리며 일본사의 중대한 분기점이 됐다.

일본의 성공에는 운도 많이 작용했다. 개항 때 맺은 불평등조약에 예속될 수 있었지만 미국의 남북전쟁 발발로 기회를 잡았다. 그 틈에 메이지유신으로 국가를 개조하고 이웃 조선을 정한론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열강 도약의 기반이 된 1905년 러일전쟁 승리에도 상당한 천운이 따랐다. 발트함대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일본까지 먼 길을 항해하는 도중 러시아 1차 혁명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면 승리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명나라 때 정화의 함대를 아프리카까지 원정 보낸 중국은 또 어떠한가? 중국은 비록 아편전쟁에서 서양에 졌지만 여전히 대제국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1880년대 일본을 능가하는 근대식 북양함대를 보유했다. 영국제 군함을 도입하고, 양무운동 부국강병책으로 공업 기반도 조성했다. 그러나 낡고 부패한 국가 운영체계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함대 규모는 일본에 뒤지지 않았지만 1894년 청일전쟁 두 차례 해전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했다. 실력이 있어야 운도 따른다.

이들과 비교하면 한국은 박복한 나라였다. 물산이 풍족한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일찍 개화할 수 있는 운도 없었다. 30여 년 전 해체된 냉전 질서가 온존하는 곳도 한반도가 유일하다. 여기에다 강대국 간 대결이라는 구시대의 지정학적 질서까지 겹치며 국가 번영은커녕 안위를 걱정하게 한다.

그런데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인가? 경제 발전의 족쇄였던 과다한 국방비는 K방산이란 효자가 됐다. 미국의 조선업 부활 프로젝트(MASGA)도 한미 전략적 제휴 강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다. 이렇듯 한국에도 드디어 국운 융성의 기운이 다가오는 것 같지만 설사 아니어도 괜찮다. 우리는 모래사장 사진과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 하나로 굴지의 조선소를 지은 민족이다. 늘 그래 왔듯이 어떠한 역경도 극복하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홍제표 CBS 정치부 선임기자
홍제표 CBS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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