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대 집중탐구] 최초의 기록들…헌신의 기억들…

입력 2026. 01. 13   17:26
업데이트 2026. 01. 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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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대 집중탐구
육군수기사 비호여단 창설 80주년 

 

강한 자부심으로…지켜온 80년
원산 탈환작전 등 6·25 30여 회 전투 혁혁한 전공
전투부대로 베트남전 파병…국군 창설 이래 최초
고 강재구 소령 등 선배들 살신성인 정신 이어와

새로운 도약 향해…나아갈 100년
보병 중심 전력서 기계화 전력으로의 전환 선도
미래전장 양상 변화 속 전투수행능력 지속 강화
최강 화력·기동력 겸비…반드시 이기는 부대로

기동과 화력으로 전장을 압도하는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 비호여단이 15일 창설 80주년을 맞는다. 국군의 모체부대로서 6·25전쟁 참전, 베트남전쟁 파병, 최초 기계화부대 개편 등 국군의 발전과 함께해 온 비호여단은 오늘날 ‘육군 기계화부대 중추’이자 ‘전투형 선봉부대’로서 새롭게 나아갈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사진=부대 제공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 비호여단 장병들이 하차 전투기술을 숙달하고 있다.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 비호여단 장병들이 하차 전투기술을 숙달하고 있다.

 

전투사격을 하고 있는 비호여단 K1A2 전차. 이경원 기자
전투사격을 하고 있는 비호여단 K1A2 전차. 이경원 기자



국군의 태동과 함께한 비호여단 

여단의 역사는 1946년 1월 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 양주군 태릉(현재 육군사관학교)에서 창설한 남조선국방경비대 1연대를 뿌리로 한다. 국방경비대는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국군에 편입됐다. 여단이 ‘국군의 모체’를 자부하는 이유다.

여단은 이후 7사단에 예속돼 경기 포천 일대를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5일엔 수도사단으로 예속·변경돼 기계·안강지구전투, 원산 탈환작전, 길주·청진 진격작전,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수도고지전투 등 30여 회의 전투에 참가했다. 국가 존망의 기로 속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제일의 부대’란 찬사를 받았다.

전쟁의 상흔을 지우고 경제적 도약을 꿈꾸던 1965년 10월엔 ‘맹호부대’ 일원으로 베트남전쟁에 파병됐다. 국군 창설 이래 최초의 전투부대 파병이었다. 이후 1973년 귀국할 때까지 약 9년간 총 90여 회 전투를 거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

‘최초·최초·최초’

여단은 국군의 모체, 전투부대 해외 파병 이외에도 다양한 ‘최초’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여단은 1973년 수도사단이 수도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됨에 따라 M48A2C 전차, M113APC 장갑차 등 M계열 장비로 무장한 국군 최초의 기계화보병부대가 됐다. 육군의 선봉이자 가장 강력한 화력과 전투력을 자랑하는 부대로 거듭난 것이다.

이후 K1 전차, 120㎜ 자주박격포를 가장 먼저 전력화하고, 기계화부대 최초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 훈련에 참여한 부대로 명성을 이어 갔다.

이렇듯 여단은 보병 중심 전력에서 기계화 전력으로의 전환을 선도하고, 궤도장비와 장갑전력을 기반으로 한 신속 기동·결정적 타격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1946년 1월 15일 열린 국방경비대 1연대 창설식.
1946년 1월 15일 열린 국방경비대 1연대 창설식.

 

행진하고 있는 국방경비대 대원들.
행진하고 있는 국방경비대 대원들.

 

베트남전 주요 전투 중 하나인 비호6호 작전 모습.
베트남전 주요 전투 중 하나인 비호6호 작전 모습.



피로 새긴 ‘위국헌신 군인본분’

여단에는 국가와 전우를 위해 목숨을 마친 선배 전우의 ‘위국헌신 군인본분’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수많은 부하의 생명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한 고(故) 강재구 소령이다. 맹호부대 1연대 3대대 중대장이던 강 소령은 1965년 10월 베트남전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던 중 부하의 실수로 부대원이 위험에 처하자 떨어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쳤다.

부하들을 살리고 향년 29세의 나이로 순직한 그는 육군의 영웅으로 현재까지 추앙받고 있다. 강 소령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고자 그가 속했던 대대는 ‘재구대대’로, 중대는 ‘재구중대’로 불리고 있다.

이 밖에도 베트남전에서 화염에 휩싸인 장갑차 속에 있던 부하를 구하고 전사한 고(故) 손태익 소령,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도 불굴의 정신으로 부대를 지휘한 ‘치호아전투 영웅’ 고(故) 이재태 예비역 소장(당시 대위) 등이 여단의 영웅들로 꼽힌다.

이처럼 여단은 단순한 전투부대를 넘어 역사와 전통, 전우애, 위국헌신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부대다. 모든 부대원은 강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똘똘 뭉쳐 임무를 완수하고 있다.

현재 여단에는 베트남전에서 활약했던 선배 전우를 이어 복무하고 있는 장병들이 있다. 이도현 상병은 헌병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외조부를, 김원일 대위는 베트남 참전용사인 조부(중사 전역)와 아버지(중위 전역)를 따라 임무를 수행 중이다.


“80년의 역사, 100년을 준비하다”

최강의 화력과 기동력을 겸비한 여단은 ‘적과 싸워 반드시 이기는 전투준비태세 확립’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안보환경과 미래전장 양상의 변화 속에서 여단은 대규모 기동훈련과 전술훈련을 통해 전투수행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실전적 훈련과 체계적인 전투준비태세 유지를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즉각 투입 가능한 대비태세를 확립하고 있으며, 장병 개개인의 전문성과 팀 단위 전투수행능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단은 현재 창설기념 주간에도 혹한기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창설 80주년을 계기로 부대의 역사와 전통을 되새기는 한편, 미래 전장에 대비한 전투력 발전 등을 통해 다가올 100년을 향한 새로운 도약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영석(대령) 여단장은 “비호여단은 지난 80년간 조국수호의 최전선에서 기계화 전투력의 가치를 증명했다”며 “앞으로도 변화하는 전장환경 속에서 기동과 화력을 결합한 기계화부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강군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육군 최초의 부대기, 지금도 같네’
1946년 만들어진 디자인·정신 계승

비호여단은 1946년 6월 1일 노창일 특무상사가 고안한 국방경비대 1연대 부대기를 현재까지 활용하고 있다. 육군 최초의 부대기라 할 수 있다.

부대기의 짙은 남색 표면은 조국의 평화를 상징하며, 호랑이는 용맹한 여단의 정신을 표현한다. 호랑이 주변의 무궁화는 대한민국 국화로 국군의 모체부대를 상징하며 3개의 별은 3군을 뜻한다. 전체적으로 조국과 평화를 수호하는 국군에서 제일 용맹스러운 부대임을 의미한다.

최초 부대기는 육군을 대표하는 역사자료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육군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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