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와 ‘회색 코뿔소’

입력 2026. 01. 12   14:42
업데이트 2026. 01. 12   15:31
0 댓글

‘회색 코뿔소(Grey Rhino)’는 검은 백조처럼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재앙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보이고, 들리며, 수없이 경고됐음에도 너무 크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돼 온 위협이다. 회색 코뿔소의 진짜 무서움은 예측 불가능성에 있지 않다. 그 반대다. 너무 분명해 더 오래 방치된다는 데 있다. 인간은 종종 보이지 않는 위험보다 보이기에 외면할 수 있는 위험 앞에서 더 느리게 움직인다. 

문명의 역사에서 위기는 늘 이런 모습으로 다가왔다. 철(Fe)의 등장이 그러했다. 철은 단순히 청동보다 강한 금속이 아니었다. 무기 재료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 권력의 독점을 무너뜨리고 사회 질서의 구조를 흔드는 존재였다. 소수만이 다루던 전쟁의 기술은 다수의 손으로 넘어갔고 기존의 위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이미 철은 충분히 보이고 있었지만, 기존 질서에 안주하던 문명은 변화를 외면했다. 그 결과는 점진적인 균열과 돌이킬 수 없는 붕괴였다. 회색 코뿔소는 늘 이렇게, 천천히 피할 수 없이 들이받는다.

지금 인류 앞에 서 있는 거대한 회색 코뿔소 중 하나가 바로 인공지능(AI), 에이전트 AI의 도래다. AI는 더 이상 실험실 속 기술이 아니다. 일하고, 판단하고, 추천하고, 설계하며 인간의 의사결정을 대리한다. “아직은 사람의 일이다.” “AI는 도구일 뿐이다.” 이 말에는 철을 보며 끝내 청동을 놓지 못했던 옛 제국의 그림자가 겹쳐 있다.

AI가 불러올 변화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노동의 의미, 인간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이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애써 고개를 돌린다.

여름 숲에 들어서면 우리는 나무보다 잎을 본다. 무성한 초록은 시선을 압도하며 생의 충만함을 과시한다.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줄기 방향, 뿌리의 깊이, 나무들 사이 간격과 균형은 잎에 가려진다. 가을이 지나 겨울 문턱에 다다르면 숲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잎이 떨어진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숲의 깊이와 여백, 구조와 침묵의 질서를 본다.

삶도 다르지 않다. 한창 바쁘고 성취가 겹겹이 쌓일 때 우리는 잎에 가려진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에이전트 AI는 단순한 계산기가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행동을 조정하는 존재다. 인간이 해 오던 ‘생각의 일부’를 기계에 위임하는 일이다. 준비하지 않은 개인에게는 일의 상실로, 준비하지 않은 조직은 경쟁력의 붕괴로, 준비하지 않은 사회에는 새로운 불평등으로 충돌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예고돼 있다. 문제는 정보 부족이 아니라 결단의 지연이다.

새해란 시간 교체가 아니라 태도의 전환이다. 무엇을 더 배울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덜어 낼 것인지를 묻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을 인간의 영역으로 남길 것인지, 어떤 판단을 기계에 맡길 것인지, 인간다움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잎이 떨어진 숲이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 이미 충분한 뿌리와 균형을 갖춰서다. 철의 시대를 건너간 문명이 그랬듯이 AI와 에이전트 AI의 시대를 건너갈 인간 역시 더 강한 도구가 아니라 더 단단한 태도로 남는다.

새해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잎을 내려놓고 방향을 바로 세우는 조용한 선택으로 열린다. 우리 눈을 가리는 무성한 잎을 내려놓을 용기는 AI라는 회색 코뿔소를 마주할 태도다. 그래야 민낯의 우리를 볼 수 있고, 다음 경계의 문으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미셸 푸코가 주는 경고다.

김희곤 국립공주대학교 안보학 교수
김희곤 국립공주대학교 안보학 교수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