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코칭의 일환으로 고위 공직 후보자의 청문회 준비를 도울 때가 있다. 인사청문회는 후보자의 도덕성과 공직 수행 능력, 정책 비전 등을 공개적으로 검증해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이뤄진다. 행정학과 정책 홍보를 공부한 덕분에 공익을 잣대로 메시지를 다듬는 데 익숙한 편이다. 무엇보다 26년간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시청자와 교감해 온 경험을 보태 청문회에 임할 후보자들의 말하기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완점을 찾도록 돕는다.
국민은 후보자의 언어로 그의 자질을 가늠한다. 그 가늠자는 말의 내용뿐만이 아니다. 음성, 눈빛, 몸짓 같은 비언어적 요소도 두루 작동한다. 긴장된 상황에서 보이는 것들에 오히려 진심이 담길 때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청문회가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견제 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국민은 후보자가 엄격성을 알고 그에 걸맞은 어휘와 표현을 청문회에서 구사하리라고 여긴다. 국민을 대신한 국회의원을 향해 감정적으로 반박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피검증자로서 의혹 제기에 겸허히 응하고, 비판은 경청하며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길 원한다.
이는 단순히 ‘예절’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후보자가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적 적절성’을 지켜 낼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한다. 청문회에서 이런 최소한의 기대가 훼손되는 순간, 우리는 그가 공적 책임의 무게를 감당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코칭을 하며 이와 관련해 무력함을 느꼈던 때가 있다. 모의청문회에서 후보자는 해당 상임위원들이 할 법한 질문마다 격앙된 톤으로 답했고,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어휘를 반복했다. 여러 차례 직언에도 변화의 의지는 미미했다. 그나마 청문회를 ‘국민과의 첫 상견례 자리’로 이해해 달라는 말에 본인의 ‘고집’을 누그러뜨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에게 전달된 게 그저 ‘포장기술’ 정도였을 것만 같아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실제 그가 청문회에서 보인 표현과 톤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말에 스민 인식과 태도는 여전히 드러났다. 이후 그에게 제기된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고, 그와 대면한 시간 동안 가졌던 불안함의 실체도 분명해졌다.
말이 모든 것을 보여 주진 못하나 말이 드러내는 누군가의 무엇에 예민해지는 순간이 있다. 특히 어휘에서 나타나는 그의 가치관에 움찔할 때 예외 없이 불편한 경험이 뒤따른다.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은 많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어떤 어휘를 가졌느냐에 따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의 범주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내뱉는 어휘가 편협한 사람의 세상은 그만큼 좁다. 흑백논리에 갇히기도 쉽다. 이에 비해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는 다양한 어휘력을 구사하는 사람은 그만큼 세상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인지한다. 그들은 자신이 오히려 많은 것을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위험한 신념을 섣불리 마음에 뿌리박지 못한다.
내가 쓰는 말이 곧 내가 품고 있는 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기를 점검하는 일은 자신이 얼마나 편협할 수 있는지 경계해 자세히 따지고 헤아려 다듬기 위한 작업이다. 그 일을 세상을 향해 자신을 잘 포장하기 위한 것으로만 여기지 말자. 말을 살피는 일은 타인이나 세상을 향한 것이기 이전에 내가 쓰는 어휘의 ‘감옥’에 스스로 갇히지 않기 위한 성찰이다. 새해를 맞아 마음을 다잡는 것 가운데 내가 하는 말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결심 또한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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