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항로 혁명: 북극 항로 시대 한국은 어디로 항해할 것인가

입력 2026. 01. 05   14:26
업데이트 2026. 01. 0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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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달 소령 해군사관학교 군사전략학과 교수
석영달 소령 해군사관학교 군사전략학과 교수

 


역사의 흐름에서 주요 항로의 변화는 곧 세계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졌다. 고대·중세에는 지중해를 장악한 세력이 번영을 누렸지만 대항해 시대 대서양 항로가 열리자 그 중심은 서유럽으로 이동했다. 1869년 수에즈운하의 개통은 희망봉을 우회하던 긴 항해를 크게 단축했고, 그 변화는 곧 주요 해상 기지의 재조정과 국가별 해양전략의 변화를 야기했다. 항로 변화는 해도에 선 하나를 새로 긋는 문제가 아니라 그와 결부된 국가의 흥망을 결정했던 ‘혁명’이었다. 현재 북극에서 진행 중인 변화는 다시 한번 세계를 뒤흔들 ‘네 번째 항로 혁명’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지난해 9월 22일 중국 컨테이너선 이스탄불 브리지호가 닝보·저우산항을 출항해 러시아 북극 항로를 거쳐 약 20일 만에 영국의 펠릭스토항에 도착했다. 같은 구간을 수에즈운하 항로로 항해하면 약 40일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절반 가까이 단축된 셈이다. 무엇보다 이 항해는 2018년 ‘빙상(氷上) 실크로드’ 구상으로 공식화된 중국의 북극 전략이 처음으로 상업용 정기노선으로 구현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스탄불 브리지호가 도착한 다음 날 중국 교통부와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이 북극 항로 운송 확대를 위한 공동 실행계획을 승인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북극 항로는 먼 미래의 선택지가 아니라 현실 속의 전략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한민국은 어디로 항해할 것인가?

먼저 극지 해역 운항을 선도할 기술 개발은 북극 항로의 ‘허브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필수과제다. 우리나라는 친환경 쇄빙선 개발을 선도할 잠재력을 가진 국가다. 북극 항로의 주요 제약인 환경 문제는 우리에게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은 북극이사회 옵서버 국가이면서도 중유를 이용한 항해로 블랙카본을 배출해 북극의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는 친환경기술을 적극 개발해 북극의 환경을 고려하면서 미래를 대비하는 국가라는 인식을 쌓아 갈 필요가 있다. 이는 향후 우리나라가 북극 문제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덕 자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극지 해역 운항인력 양성도 중요한 과제다. 해양수산부가 올해 예산안에 극지 전문 해기사 양성 예산을 반영했다는 소식은 반갑다. 우리 해군도 2017년부터 극지연구소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 장교를 편승시키고 있으며, 2022년부터는 탑승인원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해 미래를 대비 중이다. 2021년 해군순항훈련전단이 베링해를 통과하며 해상기동훈련을 하고 알래스카 앵커리지항에 기항했던 사례는 향후 유사한 활동의 확대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러한 극지 경험이 꾸준히 축적되고, 민간 해기사 양성과 맞물려 시너지를 낸다면 우리나라는 북극 항로 운항을 위한 기술과 인력이 준비된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내부에서만 북극 항로를 논의할 게 아니라 국제적 접촉면을 넓히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북극과 관련한 세계적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려면 문서만 분석할 게 아니라 관련 인원들이 북극이사회나 북극서클총회 등에 참석해 주요국들이 북극을 어떤 온도와 전략으로 바라보는지 느끼고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민·관·군 전체에서 극지 정책을 연구하고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낼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우리는 새로운 항로를 선도할 것인가, 뒤따라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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