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S 미주리 전함과 전시 생명윤리

입력 2025. 12. 31   15:38
업데이트 2026. 01. 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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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5일부터 10일까지 미국 하와이 사적 여행을 하며 리더십과 생명윤리에 관해 생각해 보도록 영감을 준 ‘USS 미주리 전함 기념관’ 방문을 국군 장병 및 군무원에게 추천하고자 한다.

1944년 1월 진수해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이라크전쟁까지 약 50년간 대양을 아우른 USS 미주리 전함은 토마호크 미사일을 장착하는 등 생명윤리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진주만에 갔으니 제2차 세계대전의 중요 포인트인 진주만 폭격현장은 꼭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가이드 안내에 따라 함미(艦尾)를 둘러보며 특이하게 장례식을 거행한 장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45년 4월 11일 일제의 가미카제에 의해 미주리는 함미를 충돌당한 적이 있었다.

이때 가미카제 비행기에 탑승했던 일본의 젊은 조종사가 함미에서 발견됐다. 분노한 선원들은 영현에 달려들었으나 당시 미주리 함장이었던 윌리엄 M. 캘러헌은 이들을 제지하며 예를 갖춰 함미에서 장례를 치를 것을 명령했다. 이는 미주리함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장례식이었다.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아군을 죽이고 학살하며 포로를 잔인하게 수용하는 적군에게 법과 규정을 모두 지키면서 존엄한 대우를 성심성의껏 해 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2년간 전투부상자처치(TCCC) 교전 중 처치 과목 교육을 담당하며 가장 중요하게 다룬 것은 “교전이 소강될 때까지 아군을 구하러 섣부르게 행동하지 말라”였다. 총알이 빗발치는 교전현장에서 아군을 구하기 위해 개활지를 뛰어가는 건 ‘구하러 달려가는 그 사람이 사상(死傷)될 수 있는 위험한 행위’다. TCCC를 교육하면서도 우리는 감정을 통제하기 힘듦을 십분 이해하는데, 아군을 죽인 적군을 보면 어떤 잔인한 행위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 또한 저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 품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았으며, 사랑하는 연인과 정든 친구들을 두고 이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다. 적군도 마찬가지다. 다만 매우 흥분한 상태에선 이성적 판단이 흐려질 수밖에 없기에 미주리 선원들은 적의 영현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간부는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미주리 전함의 장례식’이 아닐까.

나아가 휘하의 병력이 포로가 됐을 때 간부는 적국에 아군 포로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역시 전시 생명윤리를 숙지해 적군 포로에게 적용해야 한다.

끝까지 읽어 준 독자분들께 하와이 여행에서 여러 사고를 하도록 이끌어 준 ‘USS 미주리 전함 기념관’ 방문을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박상휘 육군대위(진) 국군수도병원 국군외상센터
박상휘 육군대위(진) 국군수도병원 국군외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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