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마, 전통 잇기에 마침표 없다

입력 2025. 12. 31   16:51
업데이트 2026. 01. 0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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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가 밝았다. 십이지 동물 가운데 말은 군(軍)과 가장 밀접한 동물이다. 광복 후 변변한 무기와 장비가 없던 우리 군도 말의 군사적 가치에 주목했다. 6·25전쟁이란 격랑 속에서 말은 전장을 누볐고, 그 당찬 기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글=이원준/사진=이경원 기자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 기념관 입구에 있는 백마상. 백마고지 전투 승리를 일군 국군9사단의 기상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 기념관 입구에 있는 백마상. 백마고지 전투 승리를 일군 국군9사단의 기상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1948년 창설된 국군 앞에는 난제가 가득했다. 무기체계와 기반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건 속에서 군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이는 무기를 도입하고 부대를 편성하는 차원을 넘어 전장에서 병력과 물자를 어떻게 이동시킬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그해 12월 10일 창설된 국군 최초의 기계화부대 ‘독립기갑연대’를 살펴보면 고민의 해답을 엿볼 수 있다. 독립기갑연대는 미군으로부터 받은 M8 장갑차와 트럭 등을 주축으로 했지만 여기에 군마(軍馬)를 활용한 기병 전력이 함께 편성됐다.

현대식 기갑·기계화 전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말은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48년 11월 30일 제정된 국군조직법을 보면 기병은 보병·포병·공병·헌병 등과 함께 육군 병종 중 하나였다. 

독립기갑연대에 속한 기병대대는 이름 그대로 말을 타고 기동하며 싸우는 부대였다. 말로 운반한 기관총과 박격포로 적을 타격하고, 때로는 용맹하게 돌격했다.

대대 창설 당시 350마리의 말이 있었고, 최대 600마리를 보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50년 6·25전쟁은 기병과 군마를 전장으로 끌어냈다. 기병대대는 전쟁이 발발하자 의정부로 출동해 수색작전을 전개한 뒤 한강방어전에 합류했다.

우수한 기동력을 활용해 적 동향을 정찰하던 기병들은 한강을 몰래 건넌 북한군 수백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며 적의 남침을 지연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7월 11일에는 충남 공주에서 북한군 6사단 1개 대대를 섬멸하고, 7월 14일에는 북한군 공격을 받던 미 63포병대대 병력을 구출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후 낙동강방어전에서 혈전을 치른 끝에 대부분의 군마를 잃고, 사실상 일반 보병으로 바뀌게 된다.

부대를 이끌던 장철부 중령(추서계급)은 8월 4일 청송전투 중 중상을 입자 “포로가 되는 수치를 당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병대대는 짧지만 굵직한 궤적을 남기며 군마가 과거의 유물이 아님을 입증했다. 말은 전투뿐만 아니라 수송 임무에도 투입됐다. 미 해병대 군마 ‘레클리스(Reckless)’가 대표적인 사례다.

제주에서 태어나 경주마로 조련된 레클리스는 1952년 미 해병대에 입대했다. 임무에 투입된 레클리스는 차량이 갈 수 없는 험한 길을 달리며

포탄과 탄약을 실어 날랐다. 산에서 내려올 때는 다친 병사들을 데리고 복귀했다. 다른 말과 달리 영리해서 한두 번 동행하면 혼자 보내도 길을 찾아냈다고 한다. 특히 1953년 미 해병대와 중공군의 네바다 전초 전투에서 레클리스는 사람의 도움 없이 하루 수차례 위험한 보급로를 오르내리며 중화기를 운용하던 해병대에 결정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전후 미국으로 건너가 ‘전쟁영웅’ 대우를 받았다. 전후 육군이 본격적인 기계화·기갑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군마는 전장의 중심에서 물러났지만, 그 경험과 상징은 부대 정체성 속에 남았다.

오늘날에도 육군 곳곳에는 ‘말’을 부대 상징으로 간직한 부대들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부대가 육군9보병사단. 애칭 ‘백마부대’는 6·25전쟁 당시 9사단이 이뤄낸 백마고지 전투 승리에서 비롯됐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 강원 철원군 395고지를 놓고 벌어졌다. 사단은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도 열흘 동안이나 이를 막아내며 고지를 사수했다. 아군과 적군의 포탄 세례로 산등이 하얗게 벗겨진 395고지는 백마고지란 새 이름을 얻었다. 하늘에서 보면 흰말이 누워 있는 형상과 같아 보였기 때문이라는 유래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백마고지 전투 승리를 기념해 사단에 ‘상승백마(常勝白馬)’ 휘호를 하사했고, 이후 백마부대로 불리게 됐다.

이 밖에 말을 활용한 애칭으로는 철마(鐵馬)부대, 천마(天馬)부대, 용마(龍馬)부대 등이 있다. 이처럼 말은 더 이상 전장을 누비지 않지만 부대 애칭 속에서 육군의 정신과 전통을 깨우는 존재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군마를 타고 미 군정 시기 행진하는 남조선국방경비대 대원들. 국방일보 DB
군마를 타고 미 군정 시기 행진하는 남조선국방경비대 대원들. 국방일보 DB




기병대대를 이끌고 6·25전쟁에서 활약한 장철부 중령. 국방일보 DB
기병대대를 이끌고 6·25전쟁에서 활약한 장철부 중령. 국방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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