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따뜻하게 하는 높은음자리표와 평균율

입력 2025. 12. 29   14:21
업데이트 2025. 12. 29   14:45
0 댓글
김희곤 국립공주대학교 안보학 교수
김희곤 국립공주대학교 안보학 교수



2025년의 끝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한 해의 악보를 펼쳐 든다. 어떤 날은 밝고 높은 음으로, 어떤 날은 낮고 조심스러운 음으로 흘러갔다. 때로는 쉼표처럼 잠시 멈춰 숨을 고르던 순간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소리가 겹쳐 하나의 곡을 이뤘고, 그 곡은 우리 삶의 결을 어루만지며 여기까지 흘러왔다. 이 삶의 악보 앞에서 문득 드는 두 가지 음악적 개념은 높은음자리표(G clef)와 평균율(Well-tempered tuning)이다. 이는 단순한 기호나 이론을 넘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비추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날마다 아침을 포근하게 여는 음악을 건네주는 한 친구 덕분에 이번 학기 수업은 안정감과 행복감으로 채워졌다. 런던필의 연주부터 뮤지컬과 합창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을 접하며 소리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 친구는 유명한 내과 전문의이자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의학의 깊이만큼이나 넓고 자유로운 사람이다. 함께한 음악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내 삶을 비추는 거울로 남았다.

높은음자리표는 악보의 가장 앞에서 모든 음이 길을 잃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 주는 이정표다. 이 기준이 없으면 음의 높낮이는 흐트러지고 연주는 방향을 잃는다. 우리 삶도 다르지 않다. 한 해를 지나오며 각자 마음속에는 쉽게 내려놓지 못한 기준이 하나쯤 있었을 것이다. 정직함, 배려, 성실함, 가족에 대한 책임 같은 가치들 말이다. 그것들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흔들리는 순간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한 힘이었다. 높은음자리표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조용히 되뇌던 작은 다짐에 가깝다. 그 다짐 덕분에 지나온 날들 속에서도 우리는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평균율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완벽한 음정의 비율을 포기하면서까지 어떤 조성에서도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선택한 지혜로운 타협이다. 완전하지 않으나 더 많은 소리가 함께 울리도록 만든 선택이다. 우리의 일상 역시 이 평균율과 닮아 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리듬과 음정을 가진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왔다. 내게는 옳아 보이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불협화음이 될 수 있음을 배우며 한 발 물러서고 조금 더 귀 기울이게 됐다. 그렇게 마음의 음정을 조정하며 우리는 관계라는 음악을 이어 왔다. 완전히 엇갈리지 않고 연결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에게 조금씩 공간을 내줘서일 것이다. 높은음자리표가 삶의 중심을 지켜 줬다면, 평균율은 타인을 향해 손을 내밀게 한 힘이었다.

기준과 배려, 방향과 조화가 균형을 이룰 때 삶의 선율은 깊이를 갖는다. 그래서 올 한 해는 혼자 연주한 독주곡이라기보다 수많은 관계와 경험이 함께 울리고 멈추며 이어진 협주곡에 가까웠다.

지금 스스로 물어본다. 내가 끝까지 붙들고 온 중심은 무엇이었는지,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음을 맞추며 이 시간을 지나왔는지. 이 질문은 마음 한편에 단단함을, 또 다른 한편에는 부드러움을 남긴다. 아직 비어 있는 2026년의 악보 위에 어떤 선율이 흐를지는 우리가 어떤 첫 박자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음속 높은음자리표를 또렷이 세우되 평균율의 지혜를 잊지 않는 것, 내 기준을 지키면서도 상대의 리듬을 들을 줄 아는 것. 그렇게 음을 맞춰 가다 보면 내년의 삶은 올해보다 좀 더 따뜻하고 깊은 음악이 돼 있을 것이다. 함께 걸어온 모든 날을 존중하며 그 선율이 다음 장에서도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