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일상을 살펴야 국방력이 올라간다

입력 2025. 12. 29   14:21
업데이트 2025. 12. 2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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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군의 전투력은 어디에서 나오며, 무엇이 그것을 지속시키는가. 우리는 흔히 무기체계, 훈련 강도, 지휘관의 결단력에서 답을 찾는다. 그러나 전쟁을 실제로 수행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인재들은 떠나고 떠나지 못한 사람들만 남는 조직으로 바뀔 수 있다. 전투력은 장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투력은 군인의 생활과 삶의 안정을 바탕으로 완성된다. 

미 육군의 변혁과정을 다룬 존 슬론 브라운의 『케블라 군단(Kevlar Legions)』은 불편할 수 있는 진실을 제도 차원에서 보여 준 책이다. 주목할 대목은 ‘가족지원’이다. 미 육군은 냉전 종식 이후 병사 개인을 넘어 가족까지 군이 책임져야 할 부분으로 여겼다. 이는 감성적 배려가 아니라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AFAP(Army Family Action Plan)’다. AFAP는 군인과 가족이 겪는 생활상 문제를 현장에서 수집해 이를 공식 정책 개선안건으로 끌어올리는 구조다. 핵심은 ‘불편을 모을 수 있는 통로’의 존재다. 불만을 참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면 제도로 연결되는 길을 열어 뒀다. 군 생활이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선택’이 되려면 문제가 제도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미 육군이 해외 주둔과 잦은 이동(PCS)을 전제로 총체적 생활 인프라의 책임 범위를 분명히 했다는 사실이다. 주거, 생필품 공급, 보육, 학교, 의료, 가족 네트워크, 이사지원까지 군의 책임 영역으로 설정했다. 미군은 생활 안정성이 무너지면 숙련된 병력이 떠나고, 군이 ‘초보자만 반복 양산하는 구조’에 빠진다고 본 것이다. 전투력은 결국 숙련의 누적에서 나오는데, 숙련이 누적되려면 숙련된 사람이 남아야 한다.

복지·휴양(MWR), 보육 같은 영역을 ‘기준 달성’이 아니라 ‘기준 초과’를 목표로 삼았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미 육군은 복지를 예산이 남을 때 챙기는 덤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병력 유지와 사기, 장기적 전투력의 핵심 변수로 다뤘다. 그래서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 전투력을 위한 투자’가 된다.

결정적으로 미 육군은 가족의 재정 안정성이 병력 유지에 직접 도움이 된다고 명시한다. 봉급이 많고 적은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예측 가능한 삶이 가능한가?”다. 미래를 계산할 수 없는 조직에 누가 자신의 청춘과 가족을 맡기겠는가. “지금 얼마를 받느냐”보다 “내일이 설계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국군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군인의 복지를 ‘기본적인 생색내기 수단’ 정도로 취급하고 있진 않은가. 가족 문제를 개인 사정으로 밀어내고, 구조적 문제를 정신력의 문제로 치환하고 있지는 않은가. 병력 감소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왜 떠나는지는 충분히 묻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인식 전환은 분명하다. 복지는 전투력의 아주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란 사실이다. 미 육군이 보여 준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유지하는 관점이었다. 한국군이 배워야 할 것도 바로 그 관점이다.

전쟁은 총으로 시작될지 몰라도 군대는 삶으로 유지된다. 군을 떠나는 이가 크게 늘고 있는 지금,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지점은 “더 강하게 훈련하자”가 아니라 “왜 더는 버틸 수 없게 됐나”라는 질문이다. 전투력은 결국 그 질문을 제도로 바꾸는 능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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