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바다에서 군함이 임무를 지속하려면 유류를 포함한 해상보급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 우리 해군은 전투함의 작전수행능력을 보장하기 위해 창설 초기부터 다양한 군수지원함을 운용했다. 초기에는 미국에서 유류 바지선을 도입하고 네덜란드에서 유조선을 구매해 작전에 투입했다. 하지만 이 함정들은 선체가 노후화돼 순차적인 퇴역이 불가피했고 나날이 해상작전 소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유류·청수·탄약·식량 등을 보급할 신형 군수지원함이 필요했다. 이에 해군은 전력증강계획에 발맞춰 1980년대 후반부터 군수지원함 확보를 추진했는데, 천지급 군수지원함(AOE-I) 3척이 그 주인공이다.
천지함의 역사는 1950년대로 올라간다. 해군은 1953년 6월 30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유조함 하셀(Hasseel)을 구매해 천지함으로 명명했다. 백두산 천지에서 유래한 이 이름은, 호수가 생명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듯 군수지원함이 해군의 생명줄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초대 천지함 인수요원들은 로테르담에서 함정을 인수해 도버해협과 지브롤터해협, 수에즈 운하와 인도양을 거쳐 1953년 9월 진해 군항에 입항했다. 당시 천지함은 대한민국 해군 함정 최초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기록을 남겼다. 초대 천지함은 1982년 퇴역 때까지 동서남해를 누비며 임무를 완수했다.
이후 우리 조선 기술은 거듭 발전했다. 1990년 국내에서 처음 건조된 군수지원함이 바로 현재의 천지함(AOE-57)이다. 이 함정은 기존 천지함(AO-51)에 비해 더욱 빠른 기동속력, 대형화를 통한 적재화물 다양화, 수직보급능력 등을 갖추며 작전지속능력과 해상보급능력을 크게 강화했다. 지금이야 더욱 발전된 소양급 군수지원함 등이 임무를 수행하지만 1990년 당시 천지함은 우리 해군에서 가장 크고 장기간 항해할 수 있던 최신예 함정이었다. 그 덕분에 천지함은 해군 전투함의 작전반경을 비약적으로 확장시켜 대양해군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투함들이 특정 항구에 얽매이지 않고 어느 해역에서든 지속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순항훈련 범위는 천지함 취역 전과 후로 나뉠 정도다.
해군의 역사와 함께한 천지함이 1990년 12월 29일 인수된 지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천지함은 여전히 전투함들의 생명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승조원들의 각별한 관리 덕에 여전히 깔끔하고 멋진 외모도 유지하고 있다. 승조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한 덕분이다. 언젠가 천지함도 자랑스러운 역사와 함께 퇴역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날까지 천지함과 함께 파도를 헤치며 임무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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