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정책 핵심 기조 ‘전략적 자율성’ 재정의 고심

입력 2025. 12. 26   15:09
업데이트 2025. 12. 2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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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슈 돋보기
2026년 인도·태평양 주요국의 안보정세 전망: 인도

트럼프 2기와 협력 확대 기대했지만 갈등 불거져
파키스탄과 충돌 때 미국 중재 과정서 견해차
국내 취약성 문제로 美 통상교섭 결렬 장기화
트럼프 ‘종전 외교’에 러시아 원유 수입도 압박
대미 관계 혼조 전망…러시아와는 ‘정중동’ 예상

지난 5일 인도 뉴델리 총리 영빈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정상회담 후 포럼 행사장에 나란히 앉아 있다. 타스·연합뉴스
지난 5일 인도 뉴델리 총리 영빈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정상회담 후 포럼 행사장에 나란히 앉아 있다. 타스·연합뉴스



2025년 분석 및 평가- 시험대에 오른 인도의 ‘전략적 자율성’

2025년 한 해 동안 도널드 트럼프발 국제정치 재편이 지구촌을 휩쓴 가운데 인도는 그 중심에서 큰 부침을 겪어야 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종전 외교 진척을 위한 대러 압박 차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증한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문제 삼으면서 ‘다자적 제휴’에 기초한 ‘전략적 자율성’ 확대라는 나렌드라 모디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이처럼 인도는 올 한 해 동안 대외적으로 큰 파고를 넘어야 했지만, 연초만 하더라도 상당히 우호적인 대외환경이 조성된 것처럼 보였다.

우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2023년 하반기부터 다소 냉랭했던 인도·미국 관계 복원이 기대됐다. 더욱이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에 기초해 인도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2기 행정부 들어서도 인도·미국 간 전략적 협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트럼프가 공언한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 역시 ‘다자적 제휴’를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모색하고 있는 모디의 대외정책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됐다. 인도로서는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 확대를 희망하면서도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를 방기할 수 없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인도 외교의 큰 고민거리였다. 우크라이나 종전 외교는 서방과 러시아를 놓고 불안한 줄타기를 해야 했던 인도의 외교적 딜레마를 해소해 줄 게재로 여겨졌다.

이런 연유로 인도는 트럼프의 재집권을 조심스럽게 낙관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였다. 오히려 ‘트럼프 리스크’는 인도를 매력적인 헤징 외교의 중심으로 부상시킬 것으로 기대됐다. 실제 인도는 지난 7월 영국과의 FTA 협상을 매듭지은 데 이어 2026년 초 타결을 목표로 유럽연합(EU)과의 FTA 협상에 속도를 내는 등 인도의 다자외교는 트럼프 2기 들어 큰 힘을 받기도 했다.

끝으로 2024년 가을 자치권 박탈 후 첫 지방선거를 치를 만큼 카슈미르가 안정을 되찾은 가운데 같은 해 10월 브릭스(BRICS)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중국과의 국경분쟁도 일단락되면서 인도의 대내외적인 안보 위협·도전이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5월을 기점으로 인도의 잠재적인 지정학적 리스크가 주변국 및 역외 강국과의 갈등 요인으로 예기치 않게 부상하면서 인도 대외정책의 핵심 기조인 ‘전략적 자율성’은 시련을 맞게 됐다.

첫째, 4월 파할감 테러가 수년간 잠잠했던 카슈미르 분쟁을 재점화한 가운데 인도·파키스탄 군사 충돌 과정에서 이뤄진 미국의 중재가 인도 측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형태로 귀결되면서 인도·미국 간 견해차와 갈등을 드러냈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가 이후 파키스탄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대중 견제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인도·미국 관계에서 ‘파키스탄 변수’가 다시 부상하며 인도·미국 관계 동학을 재구성하는 모양새다. 그리고 5월 인도·파키스탄 군사 충돌 과정에서 파키스탄군이 상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이에 따른 남아시아 내 인도의 대외적 입지 약화와 중국의 역내 영향력 강화는 인도로서는 뼈아픈 대목이었다.

둘째 인도·미국 통상교섭 결렬 및 장기화 역시 양국 간 외교적 공간 및 에너지 상당 부분을 빨아들이며 전 분야에 걸쳐 협력 동인을 약화하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 기조 속에서 인도에도 26%의 상호 관세를 부과했지만 인도·미국 간 고질적인 무역역조는 애초 양국 리더십의 두터운 친분을 바탕으로 큰 문제 없이 매듭지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농촌 문제를 비롯한 인도 내부의 취약성 등으로 인해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인도는 지금까지 주요국 중 미국과 통상교섭을 매듭짓지 못한 몇 안 되는 나라로 남은 채 이에 따른 불이익을 일정 부분 감수하고 있다.

셋째, 인도·미국·러시아 3각 외교의 숨통을 터줄 것으로 여겨졌던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종전 외교가 러시아의 입장 변화를 위해 러시아산 원유 교역에 대한 중첩적인 제재로 방향을 틀면서 인도의 대외적 난관은 더욱 커지게 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인도의 러시아산 에너지 자원 수입 확대를 불편해하면서도 대전략 차원에서 이를 용인해 왔던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보복 관세 25%에 더해 세컨더리 보이콧에 나섰다. 이에 따라 ‘다자적 제휴’를 통해 역외 강대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자 했던 인도의 대외정책은 양자택일을 강요받으며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5월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인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을 파키스탄 구조대원들이 살펴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5월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인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을 파키스탄 구조대원들이 살펴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함의 및 2026년 전망-인도의 ‘다자적 제휴’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2025년 한 해 동안 인도의 ‘독자성’과 ‘행동의 자유’ 그리고 ‘국가 자긍심’의 원천이었던 ‘전략적 자율성’ 원칙이 전례 없는 시험대에 오르면서 인도 외교는 다가오는 2026년 한 해 동안 ‘전략적 자율성’에 기초한 독자 외교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답하며 이를 재정의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인도는 오랫동안 ‘독자 외교’의 표본으로 여겨지며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 확대 기조 속에서도 진영이 다른 러시아와 밀도 있는 제휴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표면화된 인도와 미국 간 갈등은 인도형 ‘전략적 자율성’ 모델이 실제로는 서방의 이해와 호의에 상당 부분 기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드러냈다. 다만 ‘자강을 통한 응전’이라는 오랜 역사적 경험, 그리고 독자 외교 노선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있는 만큼 모디 정부가 외형적으로는 대외전략 기조에 큰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현시점에서 ‘다자적 제휴’를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도모하겠다는 인도의 기존 대외전략이 계속해서 유효한지를 두고 인도 안팎의 논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2026년 인도의 대외관계를 주요국 중심으로 좀 더 살펴보면 먼저 인도·미국 관계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이어진 전략적 협력 확대 기조를 뒤로 하고 대립과 갈등이 혼재하는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모디와 트럼프 모두 인도·미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고자 하는 만큼 양국을 갈라놓았던 통상교섭은 2026년 상반기에 매듭지어질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통상 전쟁 여파는 상당 기간 남으며 양국 간 애증의 골을 깊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인도의 협력을 상수로 두던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크고 작은 차질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다음으로 2026년도 인도·러시아 관계는 대외적으로는 인도·러시아 간 전략적 제휴를 유지·발전시켜 나간다는 기조를 천명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종전 외교 향방이 양국 관계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미국을 의식하는 모디 정부의 행보는 12월 초 있었던 푸틴의 인도 방문에서도 잘 드러났다. 인도는 성대한 의전과 더불어 양국 간 교역을 2030년까지 1000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재확인하면서도 2019년 핵잠수함 임차 계약을 20억 달러 규모로 확정한 것 외에는 실질적인 협력 사업을 구체화하지 않았다. 이 같은 흐름을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 종전 외교가 어느 정도 가닥을 잡기 전까지는 인도·러시아 간 전략적 제휴는 지금과 같은 정중동 형태로 머물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인도의 안보 위협·도전 요인으로 중국과 남아시아 동향을 정리하자면 새해에도 인도·중국 간 관계 개선 모드는 이어지겠지만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긴장 관계 속에서 남아시아 내 중국의 영향력 확대 움직임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인도 외교의 주요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노인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노인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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