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점을 어디에 찍을 것인가

입력 2025. 12. 23   15:52
업데이트 2025. 12. 2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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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윤 소령(진) 육군39보병사단 법사
박재윤 소령(진) 육군39보병사단 법사

 


한 실험이 있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 다섯 명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별한 사이로 늘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한 명이 키가 조금이라도 더 자라면 나머지 넷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불안에 빠지고 불만족과 불행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알랭 드 보통이 쓴 『불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키가 작은 사람이라 해도 고만고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 키 때문에 쓸데없이 괴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집단에서 다른 사람 키가 조금이라도 더 자라면 갑자기 불안에 빠지고 불만족과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키가 1㎜라도 줄어든 것은 아닌데 말이다.”

사회학자인 월터 런시먼은 이를 두고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인이 겪는 끝없는 불행의 원인으로 모두 가난하면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잘 모르지만, 남보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불행해진다는 현상을 설명한 것입니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불행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내것이 조금도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 것이 늘어나는 것은 배가 아픕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내것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문득 영화 ‘곡성’의 명대사가 떠오릅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도대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유럽에 스톤캣(Stone cat)이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중세 유럽의 한 수도원에 고양이를 키우는 수행자가 있었답니다. 그 수행자는 기도할 때 고양이를 제단의 다리에 묶어 놓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후임 수행자가 선배 수행자처럼 제단 다리에 고양이를 묶어두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고양이가 죽고, 후임 수행자도 죽었습니다. 다른 수행자가 수도원을 맡게 됐습니다. 그는 고양이가 없어 돌로 고양이 석상을 만들어 제단 옆에 두었습니다. 이를 보고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왜 고양이 석상을 제단 옆에 두는 거죠?” 젊은 수행자가 답했습니다.

“옛날부터 그렇게 해왔으니까요!” 이를 두고 스톤캣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에 두 명의 스승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이름난 인도 수행자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부처님은 그들의 경지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때 스승들은 제안했습니다. “여기서 그만 만족하고, 함께 교단을 이끌어가자!” 만약 그때 부처님이 현실에 안주했다면 인도에서 이름난 수행자 중 한 명이 되는 것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변화다. 처음부터 중요한 것은 나의 깨달음이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깨달음이 아니었다.”

우리는 때로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크고 작음’ 혹은 ‘많고 적음’에 따라 기뻐하고 슬퍼합니다. 하지만 이런 비교는 상대적이어서 절대적이거나 영원하지 않습니다. 빨간색은 빨간색대로 아름답고, 노란색은 노란색대로 아름다운 법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관조반야(觀照般若)’,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밝게 비추어 살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마음의 어느 부분에 점을 찍고 계십니까? 과거와 미래에 점을 찍은 사람은 늘 상대적 비교와 성찰 없는 관습으로 얽매여 살아갑니다. 현재에 점을 찍은 자만이 관조,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밝게 비춰 진정한 내 행복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행복과 마음을 위해 뭣이 중헌지, 중한 게 무엇인지 살펴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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