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전 세계 언론이 한 캐릭터의 ‘자유’를 선언했다. 바로 미키마우스다. 1928년 단편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에 등장한 오리지널 미키마우스의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되면서 해당 버전의 경우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이 된 것이다. 그동안 저작권 침해에 무자비했던 디즈니의 강력한 보호가 풀리면 미키마우스는 더욱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에 가까웠다. 디즈니의 보호가 풀리자 곧바로 미키마우스는 영화 속에서 연쇄살인마 캐릭터로 등장했다. 심지어 곰돌이 푸, 피터팬 등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캐릭터들이 살인마나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연달아 제작되며 동심을 깼다.
귀엽고 무해하다고 믿어왔던 캐릭터가 잔혹한 존재로 뒤집히는 장면은 낯설지만 자신의 영화를 “참신한 발상 아니냐”고 자랑하는 영화 제작자의 인터뷰처럼 퍼블릭 도메인이 창작자에게 부여하는 자유가 어디까지 확장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캐릭터 중 하나인 헬로키티다. 헬로키티는 단일 캐릭터로 연간 수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십 년간 ‘가장 돈이 되는 캐릭터’ 순위 상위권을 놓친 적이 거의 없다. 현재 헬로키티의 재산가치는 약 20조 원,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은 100조 원을 훌쩍 넘는 명실상부한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다.
입이 없고 시종일관 무표정한 고양이 캐릭터지만, 바로 그 점이 세대와 국경을 넘어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강력한 장점이 됐다. 헬로키티는 캐릭터를 넘어 하나의 산업이자 브랜드가 됐다.
하지만 1974년 창작된 헬로키티 캐릭터 역시 저작권 보호기간은 유한하다. 아직 70년의 저작권 보호기간이 좀 더 남아 있지만 조만간 헬로키티 역시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릴 날이 온다. 그날이 오면 헬로키티가 반드시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만 등장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헬로키티 연쇄살인범’이라는 다소 섬뜩한 상상도 법적으로는 허용되는 창작이 될 수 있다.
디즈니는 이런 미래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역사상 가장 집요하게 저작권을 보호해 왔다. 입법 활동을 통해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는 데 성공함은 물론 미키마우스의 이미지 훼손에 대해서도 관용없는 칼을 빼들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70년대 ‘에어 파이러츠(Air Pirates)’ 소송이다. 이들은 미키마우스를 프리섹스 주의자이자 마약을 복용하는 인물로 묘사한 만화를 제작했고, 디즈니는 즉각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미키마우스라는 캐릭터 자체가 보호받아야 할 저작물이며, 그 이미지를 왜곡·훼손하는 행위는 저작권 침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 판결은 ‘캐릭터 그 자체’가 독립적인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선구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저작권은 창작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회 전체에 돌려주기 위한 제도다. 미키마우스가 자유를 얻은 지금, 우리는 그다음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그 장면이 해피엔딩일지 새드앤딩일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미키마우스와 헬로키티를 가진 미국과 일본, 디즈니와 산리오가 부럽다는 사실이다. 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더피처럼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미키마우스와 헬로키티에 비견되는 전 세계가 사랑하는 캐릭터가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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