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뱉는 신호 없는 ‘다크 드론’ 라디오·TV 전파로 잡는다

입력 2025. 12. 23   15:51
업데이트 2025. 12. 23   15:59
0 댓글

드론과 AI, 전장의 공식이 바뀐다
전자기 침묵 속 드론 찾는 수동 탐지의 비밀

통신 신호 방출 않는 비행체 탐지 곤란
자체 전파 뿜는 능동 레이다 발각 우려
존재하는 신호 이용 패시브 레이다 부상
표적 지날 때 전파 흐름 왜곡·변화 감지
최신 글로벌 방공 체계는 두 방식 결합
패시브, 은밀한 감시…능동, 정밀 추적

헨솔트의 트윈비스(Twinvis) 패시브 레이다. 출처=헨솔트 홈페이지
헨솔트의 트윈비스(Twinvis) 패시브 레이다. 출처=헨솔트 홈페이지



2023년 9월,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공항에서 주목할 만한 실험이 진행됐다. 독일 방산업체 헨솔트가 미국 연방항공청(FAA)에 새로운 장비를 선보였다. 수신기 2대로 공항 주변 비행기를 모두 추적한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이 장비가 전파를 전혀 방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듣기만 한다. 어두운 밤에 손전등 없이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비밀은 우리 주변에 항상 흐르는 FM 라디오와 TV 방송 전파에 있다. 기존 능동 레이다가 직접 전파를 방사해 반사파를 받는 방식이라면 헨솔트의 ‘트윈비스(Twinvis)’는 항공기가 방송 신호를 가리거나 휘게 만들 때 그 변화를 포착해 위치를 계산한다. FAA는 현재 이 데이터를 기존 레이다와 비교 분석 중이다. 성능이 유사하게 나온다면 대형 고전력 능동 레이다를 보완하는 중요한 대안이 될 것이다. 트윈비스의 핵심 강점은 은밀한 광역 감시와 함께 건물과 지형이 복잡한 도심 환경에서도 안정적 성능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트윈비스의 PCL(Passive Coherent Location) 방식은 방송 전파를 활용한다. 드론이나 항공기가 방송 신호를 가로막으면 전파가 반사되거나 꺾인다. 패시브 레이다는 원신호와 반사 신호를 동시에 받아 시간 차이로 거리를, 강도 변화로 크기·속도를 계산한다.

여러 수신기를 배치하면 정확한 3차원 위치를 얻을 수 있다. 트윈비스는 360도 공역을 1초마다 업데이트한다. 회전 안테나조차 필요 없다. 탐지 거리는 능동 레이다보다 짧지만 완전히 조용하다는 것이 결정적 장점이다.

이 기술이 각광받는 근본적 이유는 능동 레이다의 구조적 취약성 때문이다. 능동 레이다는 표적을 찾기 위해 강력한 전파를 방사하는 순간 자신의 위치를 적에게 그대로 드러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Kh-31P 대레이다 미사일이 이 신호를 추적해 S-300 방공 시스템을 직접 타격했다.

재밍도 심각한 문제다. 수만 대의 전파 방해 장비가 맞붙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능동 레이다가 쉽게 무력화됐다. 반면 패시브 레이다는 자체적으로 전파를 내보내지 않아 적에게 포착되지 않으며, FM 라디오나 TV 방송 같은 광역 송신원을 활용하기 때문에 재밍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패시브 레이다는 활용하는 신호원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나뉜다. 앞서 설명한 PCL은 민간 방송 전파를 활용하는 반면 PET(Passive ESM Tracker)는 적 전투기나 드론이 직접 방출하는 레이다·통신 신호를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수신해 위치를 역추적한다. 신호 도착 시간 차이로 수백km 밖 표적도 탐지 가능하며, 실전에서 검증된 대표적 방식이다. 한편 초수평선(OTH: Over-The-Horizon) 레이다는 대기 중 전파 반사를 이용해 지구 곡률 너머까지 커버하는 초장거리 조기경보 체계다.




이 중 PCL이 최근 주목받는 이유는 새로운 위협 때문이다. 최근 전장에 ‘다크 드론’이 등장했다. 지상과 교신 없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관성항법만으로 자율비행하는 드론으로, 통신 신호를 전혀 내보내지 않는다. 기존 PET 방식으로는 포착이 불가능하다. 여기서 PCL의 진가가 드러난다. PCL은 드론이 방출하는 전파가 아니라 드론이 차단하거나 휘게 만드는 전파의 변화를 감지한다. 아무리 조용한 드론이라도 물리적으로 공간을 차지하면 주변 전파 환경을 교란한다. PCL은 바로 그 ‘전파 그림자’를 읽어낸다.

최근 글로벌 방공 체계는 능동 레이다와 패시브 레이다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독일 헨솔트는 베를린 에어쇼에서 TRML-4D 능동 레이다가 우크라이나에서 실제로 운용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 레이다는 250㎞ 반경에서 1500개 이상의 표적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는 강력한 장비다.

독일의 운용 방식이 흥미롭다. 평소에는 트윈비스가 주변 방송·통신 신호만으로 넓은 지역을 은밀하게 감시한다. 표적이 확인되면 그 좌표를 TRML-4D에 전달한다. 그러면 TRML-4D는 필요한 몇 초 동안만 전파를 방사해 정밀 추적과 요격 미사일 유도를 수행한 후 즉시 꺼진다. 적의 대레이다 미사일이 날아올 때는 이미 레이다가 사라져 있다. 이른바 ‘레이다 온타임 최소화’ 전략이다.

이러한 융합 전략은 독일만의 시도가 아니다. 체코의 ERA는 능동 레이다를 전혀 켜지 않고도 요격 미사일을 유도할 수 있는 패시브 레이다 체계를 개발 중이다. 2024년 라트비아와 슬로베니아가 이 시스템을 정식 주문했다. 중국도 남중국해 인공섬에 패시브 레이다를 배치해 미국 항모타격단과 스텔스 전투기의 움직임을 장기간 감시하고 있다.

패시브 레이다가 급속히 확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스텔스 탐지 능력이다. 스텔스 기술의 핵심은 능동 레이다의 반사파를 극도로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패시브 레이다는 반사파가 아니라 표적이 지나가며 주변 전파 흐름을 미세하게 왜곡시키는 ‘전파 그림자(shadowing)’를 감지한다.

스텔스 전투기라 해도 전파 환경 자체를 완벽히 무시할 수는 없다. 기체가 공간을 이동하면 필연적으로 주변 전파의 흐름이 바뀐다. 이 때문에 패시브 레이다는 스텔스 표적 추적에서 능동 레이다보다 구조적으로 유리한 면이 있다.

결국 패시브 레이다와 능동 레이다는 대립이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다. 패시브는 넓고 은밀한 감시를 담당하고, 능동은 짧고 강력한 정밀 추적을 담당한다. 두 체계를 실시간으로 융합하면 단독 센서로는 놓칠 수 있는 표적까지 안정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한국은 능동전자주사식위상배열(AESA) 레이다, 장거리 3D 레이다, 대포병 레이다 등 능동 레이다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다. 동시에 전파 송수신 반도체 기술, 고성능 디지털 신호처리, 인공지능(AI) 기반 표적 인식 기술 등 패시브 레이다의 기반기술도 꾸준히 축적해 왔다. 특히 LIG넥스원의 대포병 레이다는 발사음과 탄도를 동시에 분석하는 복합 센서 융합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패시브 레이다 개발의 기술적 토대가 충분하다.

북한의 소형 무인기 침투와 주변국의 스텔스 전력 증강을 고려할 때 한국도 패시브·능동 융합 체계 구축을 본격화할 시점이다. 이미 존재하는 전파를 활용해 표적의 흔적을 읽는 능력은 앞으로 전장 우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2025년을 결산하면서 드론 전쟁의 양상을 정리해 본다.

 

필자 김형석 한성대학교 국방과학대학원 국방전력학과 교수는 한국대드론산업협회 드론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하늘의 창과 방패, 드론전쟁의 최전선』이 있다.
필자 김형석 한성대학교 국방과학대학원 국방전력학과 교수는 한국대드론산업협회 드론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하늘의 창과 방패, 드론전쟁의 최전선』이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