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대와 함께하는 ‘국방안보진단’
42. 북한 경제, 다음 5년은 장밋빛일까?
대중 무역 재개·대러 협력 확대로
GDP 등 코로나19 이전 수준 회복
경제제재 지속되며 거래 품목 제한
원산·갈마 관광 개발 등 핵심 사업
경제적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 낮아
북과 대화·협력 서두르기보다
차분히 우리 역량 쌓아야 할 때
북한 경제는 최근 대중 무역 재개와 대러 협력 확대로 회복세를 보인다. 그러나 대북제재와 외화 부족의 제약은 여전하며, 핵심 정책들의 경제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크다. 경제문제는 결국 북·중·러 연대 균열과 북한 변화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다가올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지금은 대화와 협력의 재개를 서두르기보다는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치밀한 분석과 주변국 외교를 통해 역량을 쌓아야 할 시점이다. 정리=김해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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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3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내년 1월 9차 당대회를 앞두고 있어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메시지를 아끼는 모습이었지만 경제 부문에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2021~2025년) 계획’(5개년 계획) 완수와 최근 지방발전정책의 성과를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바닥을 찍고 반등한 북한 경제
돌이켜보면 ‘5개년 계획’이 시작된 2021년 초 북한의 경제 상황은 암울했다. 누적된 대북제재 영향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며 무역에 의존해 지탱해오던 산업 부문이 직격탄을 맞았고, 기존 외화벌이 사업은 상당 부분 마비 상태였다. 당해 1월 개최된 8차 당대회에서 성장보다 ‘정비’ ‘보강’을 강조했던 것은 이전 5년(2016~2020년) 목표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된 냉혹한 현실에서 내놓은 김정은의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듬해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뒤이은 코로나19 퇴조가 북한 경제에 반전의 계기가 됐다. 중국과의 무역이 재개돼 가발과 같은 임가공 제품 수출과 건설 자재, 식료품 등 수입 물자 도입이 활성화됐다. 북한의 군수물자 수출로 시작된 북·러 간 군사협력이 경제 분야로도 확장돼 식량, 정제유 등 필수 물자 수급 여건을 개선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추정한 북한 국내총생산(GDP)은 2017년 이후 역성장을 거듭하다가 2023년 3.1% 플러스 성장으로 반등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7%를 기록했다. 이 수치를 받아들인다면 북한은 코로나19 이전의 경제 규모를 회복한 셈이다. 특히 군수물자 생산과 관련된 중화학공업(2023년 8.1%·2024년 10.7%)과 정책적 드라이브가 강하게 걸려 있는 건설부문(2023년 8.2%·2024년 12.3%)이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김정은의 자신감, 다음 5년도 장밋빛일까
김정은은 지정학이 가져다준 국제정치 무대에서의 입지 강화와 경제 부문 회복세에 고무됐을 것이다. 어쩌면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염원하던 ‘국방’과 ‘경제’의 병진이 비로소 가능하게 됐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제 얻을 것이 없다고 여기는 한국에는 ‘더 이상 동족이 아니다’며 선을 긋고, 제재 완화를 위한 미국과의 협상은 급한 것이 없다고 버티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내년 1월 치러질 9차 당대회에서도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향후 5년 경제 건설의 청사진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북한 경제의 다음 5년은 장밋빛일까?
경제 회복 구조적 제약과 정책 실패 가능성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최근 북한 경제 회복 이면에 자리한 여러 문제가 드러난다. 지난해 북·중 무역 규모는 코로나19 이전의 80% 수준이었고, 2025년에는 95% 정도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초부터 2년 반가량 사실상 무역을 전면 중단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회복세가 더디다. 대북제재의 제약으로 거래할 수 있는 품목이 제한적이고 북한의 외화 결제 여력도 부족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성장보다는 생존을 바라는 중국이 북한과의 협력을 크게 확대하려 할 유인도 적다. 러시아와의 다음 단계 협력으로는 대규모 노동자 파견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는 외화와 함께 외부정보 유입을 촉진할 수 있다. 사회 통제의 이완을 우려하는 북한 정권에는 딜레마가 될 것이다.
최근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도 실제 경제적인 성과로 이어질지는 회의적이다. 올여름 개장한 원산·갈마지구는 북한 관광 개발의 핵심 사업이다. 최대 약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대규모 리조트 단지의 주 타깃층은 누구일까? 러시아인들이 10시간 이상의 비행을 감당하며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원산에 와야 할 이유를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전 세계 관광지를 다니며 다양한 체험을 즐기는 중국인들이 동해안 해변에서의 통제된 여름휴가에 만족할지도 의문이다. 유일한 잠재고객이 될 수 있는 한국인에 대해서는 ‘적대적 두 국가 선언’과 ‘남한 문화 배격’ 정책으로 스스로 차단막을 설치해 두고 있다.
10년 안에 200개 모든 시·군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겠다며 작년부터 추진 중인 ‘지방발전 20×10 정책’ 역시 대규모 외부 투자 유입 없이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2년간의 진행 상황을 관찰해보면 취약한 제조업 부문의 생산성 향상보다는 공장과 주택 건설을 일단 완료하는 것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각 지역이 부여된 목표를 달성하기에 충분한 재원을 중앙으로부터 제공받지 못한다면 그 부족분은 자체적으로 시장과 무역을 통해 조달해야 한다. 이것이 최근 2년간 북한 시장의 환율과 물가를 폭등시킨 주원인 중 하나라는 일부 전문가 평가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대규모 동원과 시장 물자 부족의 이중고에 시달릴 북한 주민들이 삶이 걱정일 따름이다.
한국의 과제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론 평화 구축을 위한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천명하고 있는 지금 협력의 기회를 억지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오히려 섣부른 움직임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이후 한국이 움직일 외교적 공간을 더욱 축소할 수 있다.
일견 공고해 보이는 북·중·러 연대는 ‘경제’라는 약한 고리를 타고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그 기회를 포착하고 경제 협력을 마중물 삼아 북한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 실력에 달려 있다. 지금은 대화와 협력의 재개를 서두르기보다 차분히 역량을 쌓아야 할 때이다.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실태 평가와 북한 정권의 인센티브 체계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 주변국과 역내 경제협력, 그리고 북한 핵 문제를 함께 엮어 논의할 수 있도록 외교적 자산을 준비하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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