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시도·과감한 도전…올해의 K팝 숨은 주역은

입력 2025. 12. 22   16:43
업데이트 2025. 12. 2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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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스타를 만나다
창작자를 조명하는 ‘작은 시상식’ 

듣고 보는 종합 콘텐츠 제작 주역 중 내 마음속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작사 이슬아·켄지, 작곡 씨샤·뮤비 윤승림 감독에 영예를…
누구도 가지 않은 길 갔던 엔믹스, 올해의 아티스트·앨범상 주고파
더 나은 K팝 고민하는 모두가 ‘공로상’

 

씨샤
씨샤

 


지난 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제17회 멜론뮤직어워드’는 장관이었다. 5시간에 달하는 대장정 동안 주요 대상 4개를 포함해 총 39개의 트로피가 올해를 빛낸 K팝 음악가들에게 돌아갔고, 20개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영예의 주인공은 총 3개의 대상 수상을 포함해 7관왕에 오른 지드래곤, 올해의 아티스트에 이어 솔로공연으로 숱한 이야깃거리를 남긴 블랙핑크 제니, 최고의 남자그룹으로 선정된 보이넥스트도어와 그 활약에 힘입어 프로듀서상을 받은 지코의 KOZ엔터테인먼트였다.

시상식은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다양한 무대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콘서트가 아니라 시상식이란 기준을 적용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유명 배우들과 인플루언서, 스포츠 스타들이 시상에 나서 출연할 수 있는 아티스트에게 트로피를 할당하는 소모적인 이벤트가 우후죽순 난립하는 게 한국 대중음악 시상식의 현주소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기업의 서로 다른 입장과 ‘인생 무대’를 남겨야 하는 기획사의 오래된 합의 과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K팝을 관심 있게 듣고 있는 음악 팬들이 최근 시상식의 인기 위주 수상명단에 공감하기 어려울 뿐이다. 그저 우리 가수가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할 부문에서 트로피를 가져갔다고 기뻐하기보다 아티스트의 활약상을 충분히 조명하되 그들을 빛나게 해 준 창작자들에게 향하는 관심을 환기해 시상식 본연의 가치를 체험하는 경험도 분명 필요하다. 특히 K팝은 ‘듣는 음악’이 아니라 ‘보는 음악’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종합 음악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공헌하는 이가 많다.

이를 바탕으로 지면을 빌려 작은 K팝 시상식을 열어 본다. 먼저 작사·작곡 분야다. 작사가로는 소설가 이슬아를 소개하고 싶다.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성장한 작가이자 드라마 각본가, 출판사 대표, 음악가인 그는 올해 신인 걸그룹 키키의 독특한 세계를 설계하는 데 공을 들였다. 특히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에 많은 영감을 받았는지 ‘아이엠 그라운드’ ‘딸기 게임’에 힌트를 얻어 만든 ‘그라운드워크(Groundwork)’와 ‘딸기 게임’의 노랫말로 놀이 형식을 빌려 그룹을 재치 있게 소개했다. 공동 수상이 가능하다면 SM의 ‘핑크 블러드’를 다시 혈관에 흐르게 한 켄지다. 동방신기의 ‘라이징 선(Rising Sun)’을 계승한 라이즈의 ‘잉걸(Ember to Solar)’, 맑고 투명한 걸그룹 하츠투하츠의 신비로운 10대 세계를 필두로 NCT 위시, NCT 드림과 같은 SM의 대표 그룹들부터 트와이스, 제로베이스원, 있지, 아이덴티티 등 K팝 신 전반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이슬아
이슬아

 

엔믹스
엔믹스



작곡가 트로피는 씨샤(C’SA)에게 돌아간다. 엠넷 오디션 ‘아이돌학교’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던 그는 솔로 아티스트 및 프로듀서로 보폭을 넓히며 프로미스나인, 루셈블, 케플러, 아르테미스 등 음악적으로 호평받은 작업물을 다수 내놨다. 2025년은 씨샤의 잠재력이 폭발한 해로, 그 중심에는 엔믹스와의 작업이 있다. ‘스피닌 온 잇(SPINNIN’ ON IT)’처럼 단체 크레디트에 이바지한 곡도 있지만, 그룹 위더퓨처의 엔즈와 함께 만든 ‘피닉스(Phoenix)’와 ‘빠삐용(Papillon)’은 그의 힘으로 만들어 낸 성과다. 2025년 K팝에서 가장 전위적이고 혁신적인 시도가 빛났던 이 2곡만으로도 올해의 작곡가로 선정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더해 트리플에스의 ‘어제 우리 불꽃놀이’, 권진아의 ‘재회’, 프로미스나인 출신 이서연의 솔로 데뷔곡 ‘네이키드’ 등 두 귀를 잡아끄는 노래의 작곡 명단에는 반드시 씨샤의 이름이 있었다.

올해 최고의 프로듀서 부문은 더블랙레이블의 단체 수상이다. YG엔터테인먼트의 중추였던 테디는 빈스, 24, 도민석, 프로듀싱 그룹 아이디오(IDO)와 함께 올해 종횡무진 활약하며 자사 레이블의 존재감을 각인했다. 올해의 신인으로 손꼽히는 올데이프로젝트와 미야오, 전소미와 같은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음악 장르를 K팝의 통속성과 잘 버무려 대중가요로 제공했다. 무엇보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의 제작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이견의 여지가 없다. 가장 바쁜 한 해였고, 가장 큰 결실을 본 해였다.

뮤직비디오는 리전드필름 윤승림 감독의 손을 들어 주고 싶다. 지난해 XG, 아이브, 보이넥스트도어와 함께하며 인상적인 결과물을 내놨던 리전드필름의 일원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올해 올데이프로젝트의 ‘페이머스(FAMOUS)’와 전소미의 ‘엑스트라(EXTRA)’, 있지의 ‘터널 비전(TUNNEL VISION)’으로 독특한 미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지난해 ‘아마겟돈’으로 함께했던 에스파의 ‘리치 맨(Rich Man)’을 하이라이트로 꼽고 싶다. 음악적으론 에스파의 경력 가운데 가장 미진했던 노래가 미식축구, 레이싱, 차량 정비, 익스트림 스포츠 등 강렬한 젠더 전복의 서사를 역동적인 영상으로 구현한 뮤직비디오를 만나고야 비로소 그 메시지를 찾았다.

이외에 퍼포먼스는 K팝 현지화 그룹의 편견을 부숴 버린 캣츠아이의 ‘날리’를 창작한 그랜트 길모어와 소헤이 스기하라를, 베스트 스타일링은 최근 더 주목받고 있는 엑스러브와 스스로 경력의 전환점을 만든 다영에게 시상한다. 베스트 컬래버레이션 부문이 있다면 YB의 헤비니스 도전기에 키치하게 동참한 JYP의 보이밴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를 소개하고 싶다.

영예의 대상이다. 여기서부터는 멜론뮤직어워드 규정에 따라 골라 보겠다. 올해의 아티스트는 단연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갔던 엔믹스, 올해의 앨범은 그 도전정신을 잃지 않으며 견고한 구성으로 그룹의 청사진을 완성한 ‘Fe3O4: Forward’다. 올해 최고의 노래 역시 엔믹스의 ‘빠삐용’이다.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음악적 성취를 이룬 아티스트와 그 제작자에게 시상하는 올해의 레코드 부문은 제니에게 돌아간다. ‘인공지능이 복제할 수 없는’ 당당한 태도, 글로벌 슈퍼스타가 로컬문화에 영감받아 이를 존중하고 팝의 한가운데로 이식하는 등 뛰어난 솔로 성과를 거뒀다. 정말 마지막으로 공로상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K팝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감싸 쥐는 모든 창작 일선의 제작자와 우여곡절에도 K팝의 더 나은 내일을 고민하는 관계자 및 팬들이다. 이들과 함께 내년에도 K팝은 좌충우돌, 우당탕 굴러갈 것이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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