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장병들이 13년째 지원한 ‘마중물 돌봄센터’…그 뿌리는 1960년대 ‘일심학교’

입력 2025. 12. 17   17:18
업데이트 2025. 12. 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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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心'
작은 단칸방서 시작된 작은 불빛
한마음으로…수십년 이어진 정신

강원 동해시의 농어촌이 만나는 작은 마을, 망상동. 작은 건물 2층에 있는 ‘마중물 아동돌봄센터’는 방과 후면 35명의 아이들이 몰려들어 시끌벅적하다. 그 덕분에 1층 노인정에도 활력이 돈다. 농어촌 지역 특성상 꾸준한 돌봄이 필요하지만 수요에 비해 예산과 후원은 빠듯하다. 그럼에도 10년 넘게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데는 이유가 있다. 해군1함대 장병들이 자발적으로 이어온 봉사와 후원 덕분이다. 선배 해군 전우들이 세운 ‘일심학교 정신’을 계승해 지역 어린이의 꿈을 키우는 1함대 장병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조수연/사진=한재호 기자

강원 동해시 망상동 마중물 아동돌봄센터에서 지역 청소년을 위해 봉사하는 해군1함대 광명함 출신 장병들이 활짝 웃고 있다. 최인재(왼쪽 둘째) 예비역 원사는 10여 년째 센터에서 봉사하며 ‘일심학교 정신’을 잇고 있다.
강원 동해시 망상동 마중물 아동돌봄센터에서 지역 청소년을 위해 봉사하는 해군1함대 광명함 출신 장병들이 활짝 웃고 있다. 최인재(왼쪽 둘째) 예비역 원사는 10여 년째 센터에서 봉사하며 ‘일심학교 정신’을 잇고 있다.


1.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해군이 키우는 지역 청소년의 꿈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바로 동해시의 ‘마중물 아동돌봄센터’를 두고 하는 것이다. 외진 골목에 자리잡은 돌봄센터에선 해군1함대와 지역사회가 함께 어린이를 돌본다. 단순한 자원봉사라고 부르기에는 관계의 결이 훨씬 깊다. 

돌봄센터를 주기적으로 찾아 봉사하는 장병 대부분은 광명함 승조원 출신이다. 함장부터 주임원사까지 승조원들은 근무지가 바뀌거나 군문을 떠났어도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찾았고, 그 관계를 오래도록 견고하게 잇고 있다.

특히 최인재 예비역 원사는 2015년부터 이곳에서 봉사하고 있다. 그는 10년이 넘는 시간 다른 장병들도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적극 독려·지원했다. 시설 보수부터 학습 지원, 환경 정비까지 구조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체계를 잡는 데도 앞장섰다.

송현섭 돌봄센터장은 “벽지 뜯기 같은 단순한 일부터 누수가 생긴 날까지 장병들이 직접 와서 손을 봤다”며 “장병들은 아이들의 일상을 꼼꼼히 기억했고, 아이들도 장병을 형, 누나처럼 따른다”고 설명했다.

장병들을 따라다니며 ‘나도 언젠가 군인이 되겠다’고 말하던 한 아이는 그 꿈을 이뤘다.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 현재 해군 중사로 복무 중이다.

 

일심학교 터에 졸업생들이 세운 김수남 군목 추모비.
일심학교 터에 졸업생들이 세운 김수남 군목 추모비.



2. 1964년 권세춘 중사 야학서 시작…김수남 군종목사 남다른 헌신

동해 지역 어린이와 군인들의 끈끈한 연대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돌봄센터는 1960년대 해군이 세운 ‘일심학교 정신’에서 이어졌다.

일심학교의 시작은 1964년 당시 묵호경비부에서 근무하던 권세춘 중사의 집, 작은 단칸방이었다. 권 중사는 학비가 부족해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하던 청소년 6명을 집으로 불러 단칸방에서 야학을 시작했다.

학생 수가 늘어 단칸방이 더는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쯤 권 중사의 야학 이야기가 사령관에게 보고됐다. 이후 부대 식당 한쪽이 임시 교실이 됐고, 아이들은 조금 더 밝은 조명 아래서 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일심학교의 시초였다.

당시 ‘일심학교’ 학교장은 사령관이 맡고, 학사 운영은 군종실이 주도했다. 학생들은 낮에 일하고, 저녁에는 학업을 이었다. 대학 교육을 받은 장병들은 일과 후 자발적으로 교편을 잡았다.

1973년 묵호경비부에 부임한 김수남(소령) 군종목사는 일심학교 발전에 헌신한 주역이다. 그는 성경과 음악을 가르치며 학생들을 세심히 살피고, 지역사회 기금을 모으고 취업처를 찾아다니며 교육 환경 개선에 힘썼다. 업무와 일심학교 지원을 병행하며 헌신한 김수남 군종목사는 과로로 순직했다.

졸업생들은 김수남 군종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학교 터에 추모비를 세웠다. 이 비석은 지역민과 함께하는 해군정신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있다.


옛 일심학교 터에 남아 있는 건물의 목재 골조.
옛 일심학교 터에 남아 있는 건물의 목재 골조.



3. 의무교육 확대로 학교 문닫았지만…마중물 돌봄센터로 배움 계속된다

1980년대 정부 의무교육 확대로 일심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해군의 ‘일심학교 정신’은 돌봄센터에 여전히 남아 있다.

돌봄센터 역시 작은 공간에서 시작해 공동체가 아이들을 지키는 구조다. 장병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학교생활을 챙기며 사소한 일에도 달려오는 장면은 1960년대 장병 교사들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친다. 지역사회와 협력한 과거 일심학교의 민·군 상생 구조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모습이다.

현장에서 만난 일심학교 졸업생들은 “군인들이 우리를 진짜 학생으로 대해줬다는 경험 자체가 삶을 바꿨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일심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누군가 책임지지 않던 아이들을 군이 먼저 품은 유일한 사례였다”며 “그 정신이 지금 돌봄센터에서 다시 살아나는 걸 보면 뿌듯하다”고 전했다.

송 돌봄센터장은 “장병들이 오는 날은 아이들이 먼저 뛰어간다. 승조원이 바뀌고 배가 퇴역해도 관계는 끊기지 않았다”고 했다. 유정식(중령) 당시 광명함장도 사비로 후원금을 지원하며 이 연결을 지켜왔다.


4. 장병들 ‘첫 어른’으로 기억하기에 해군 입대해 감사함 전한 아이들

돌봄센터를 거쳐간 청소년 중에는 해군에 입대한 이도 있다. 장병들을 보며 ‘나도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간 아이들이다. 일심학교 졸업생들이 권세춘 중사와 김수남 목사를 평생 기억하듯, 돌봄센터 아이들도 장병들을 자신의 ‘첫 어른’으로 기억한다. 

군과 지역이 함께 만든 돌봄·교육의 전통은 결국 수십 년 전 한 단칸방에서 시작된 작은 불빛이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돌봄센터장, 광명함 출신 장병들, 일심학교 동문은 모두 이렇게 입을 모은다.

“사람을 바꾸는 건 결국 마음과 관심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그건 바뀌지 않아요.”

동해의 2층 작은 돌봄센터에서 해군의 희생정신은 오늘도 한 세대를 조용히 키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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