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그림을 도운다

입력 2025. 12. 17   16:04
업데이트 2025. 12. 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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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 미술평론가
황인 미술평론가



재즈에 ‘임프로비제이션(improvisation)’이란 영역이 있다. 우리말로는 ‘즉흥’으로 번역된다.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게 아니라 연주자의 기분이나 청중의 반응에 맞춰 곡을 변형시키거나 순간적으로 떠오는 새로운 음률로 연주하는 걸 이른다. 

1980년대 이화여대 앞 시장통에 재즈바 ‘야누스’가 있었다.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이 경영을 맡았다. 낮에는 혼자 가게를 지키며 피아노를 치고 노래 연습을 하곤 했다. 손님이 오면 커피를 팔긴 했는데, 매상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야누스는 공연이 열리는 저녁이 돼야 비로소 활기를 띠었다. 연주는 관객 바로 앞에서 이뤄진다. 연주가의 악기 구성은 그때그때 다르다. 대개 트럼펫, 트롬본, 피아노, 색소폰 등이 주축을 이룬다. 이판근, 김대관, 이동기, 최선배 등이 자주 등장하는 연주자였다. 작곡가 길옥윤이 소프라노색소폰을 들고 연주에 동참하기도 했다.

공연의 절정은 임프로비제이션이다. 합주를 하다가 악기마다 개인이 단독으로 연주하는 순간이 온다. 연주가는 임프로비제이션의 시간을 마음껏 영위한다. 곡의 전체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음악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개성적인 운율을 구사한다. 같은 타이틀의 곡이라도 매일 연주가 달라진다.

임프로비제이션에는 불문율이 있다. 개인기로 곡 전체가 완성되거나 끝나 버리면 안 된다. 연주는 상대방이 치고 들어올 공간을 남기면서 빠져나가야 한다. 나의 연주가 상대방의 연주를 불러오는 마중물이 된다. 내 연주가 역량과 개성을 뽐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상대방의 연주를 불러오고 응원해 주고 있다. 여러 개인기가 이어지지만, 곡 전체를 흐르는 집요저음(basso ostinato)의 흐름은 깨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악기와 다른 개성이 모여 시간의 결을 따라 전체를 완성해 나가는 화이부동(和而不同·조화롭되 같지 않다)의 경지다.

미술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다. ‘합작도’로 불리는 장르다. 하나의 화폭에 여러 화가가 함께 그린 그림이다. 물론 각자의 낙관도 같이 찍는다. 20세기 초반 한국화 화가들이 모여 합작도를 그리곤 했다. 여기에도 원칙이 있다. 나의 그림이 상대방이 그릴 공간을 침범해선 안 된다. 내 그림이 지나치게 완성도가 뛰어나서도 안 된다. 합작으로 병풍을 맡았을 때 내가 봄을 그리면 동료는 여름을 그린다. 완성은 어디까지나 동료 화가와 함께 이뤄진다.

화가 임직순(1921~1996)은 색채의 마술사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색채 구사에 능했다. 그는 드로잉의 명수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릴 때 임직순만의 묘한 버릇이 있었다. 예컨대 왼쪽 아래 하단을 그릴 때 그의 시선은 엉뚱하게 오른쪽 상단을 향하고 있었다. 손의 위치와 시선의 방향이 달랐다. 저쪽에 빨간색이 있다는 걸 의식하면 이쪽에 파란색이 들어가야 할지, 회색이 들어가야 할지 판단된다. 저쪽의 연필이 진하게 그어져 있으면 이쪽에선 약하게 선을 그어 본다. 저쪽의 필획이 너무 빠르면 이쪽의 필획은 속도를 늦춰 본다. 임직순의 훌륭한 점은 전체 조화를 꾀한다는 데 있었다. 축구 공격수가 혼자 골문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는 게 아니라 멀리 떨어진 동료의 방향과 속도를 지켜보면서 볼을 드리블하거나 패스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돕듯이 이 세상에는 소리가 소리를 돕고, 그림이 그림을 돕는 경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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