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군사명저를 찾아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전략』(2025)
White House. 2025. 『National Security Strategy』. pp. 29. - 미국 우선주의 천명한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 지침서
이달 초 공개된 전략서 속의 한국
방위비 분담·경제적 부분만 언급
미국 우선 서반구 안정 전략 집중
유럽 ‘정체성 회복’ 중동 ‘핵심이익 관리’
국가이익 우선 선택과 집중 전략 뚜렷
12월 6일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전략서)이 공개되면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 언론은 북한 비핵화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유럽과의 절교 선언’으로 평가할 정도로 심각하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이 지침서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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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잘못됐는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서는 지금까지 미국의 전략이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국가전략의 목적은 핵심적인 국가이익을 보호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미국의 전략은 세탁물 바구니처럼 이것저것 욕망하는 것들로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미국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료하게 정의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을 주도한 엘리트들은 미국의 영구적 글로벌 지배를 국익으로 오인했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국내 복지 확대와 대외적 군사 개입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다고 과신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잘못된 기대는 미국 경제와 군대가 전적으로 의존하는 중산층과 산업 기반을 붕괴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또한 동맹국의 안보상 무임승차를 방치했으며, 국제기구나 초국가주의가 미국의 주권을 잠식하도록 용인했다고 지적한다. 요약하자면 미국의 주류 엘리트들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해 왔고, 그로 인해 국가이익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고갈시켜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무엇을 원해야 하는가? 대외적 차원에서 크게 다섯 가지 사항을 내세운다. 우선 서반구의 안정이다. 서반구는 아메리카 대륙을 의미한다. 남미로부터의 대규모 이주나 마약의 유입을 막는 것이 핵심이다. 남미가 미국 본토 안보와 직결된 핵심 전략 공간으로 규정된 셈이다. 이러한 변화를 먼로 독트린에 대한 ‘트럼프의 보완(Trump Corollary)’으로 명명하고 있다. 둘째는 외국 행위자들이 미국 경제에 가하고 있는 피해를 중단 혹은 반전시키는 한편 인도·태평양의 주요 항로에서 항해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다. 셋째, 유럽의 자유와 안보를 지원하지만 유럽이 문명적 자기확신과 서구적 정체성을 회복하길 원한다. 넷째, 중동과 원유 공급선, 그리고 주요 요충지가 적대적 세력에 넘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지역에서 끝없는 전쟁에 말려드는 것은 피해야 한다. 다섯째, 미국이 주요 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A)이나 퀀텀 컴퓨팅 등 첨단분야가 더욱 중요하다.
국가이익의 구체적 목표가 제시됐다면 이를 실행할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서에는 전략의 원칙(principles)과 우선사항(priorities), 지역별 목표를 명료하게 나열하고 있다. 미국 대외정책은 ‘실용적’이어야 하며 ‘미국 우선(America First)’ 원칙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세부적 원칙은 우선 핵심적인 국가이익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고, 불필요한 외국 분쟁에 대해서는 개입하지 않는다. 체제에 구애받지 않는 유연한 현실주의를 지향하고, 국제기구에 구애받지 않는 국가·주권의 우선성을 강조한다. 미국을 위협할 수준의 지배력 행사를 용납할 수 없다. 경제적 성장보다 미국 노동자를 우선시하고 안보상의 무임승차나 무역 불균형은 공정성 차원에서 허용하지 않는다. 인종적 문화적 특혜를 반대하며 능력과 자격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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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반구>인도·태평양>선별적 개입
이러한 원칙에 따라 우선적으로 추진할 정책을 제시한다. 우선 대량 이주의 시대는 끝났다고 천명한다. 나라에 누가 들어오는지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주와 입국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둘째, 핵심 권리와 자유의 보호를 강조한다. 주류 담론과 상이한 목소리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 방위책임을 분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넷째, 트럼프의 방식대로 평화협상을 통해 분쟁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도 부각시키고 있다. 다섯째, 궁극적으로 경제적 안보가 국가안보의 근본적 내용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세부적 정책 목표로는 무역수지의 균형, 핵심 공급망과 자원에 대한 접근 확보, 미국의 재산업화(제조업의 부활), 방위산업의 토대 재건, 에너지 지배력 회복, 미국 금용산업의 확대를 들고 있다.
미국의 전략서가 발행되면 전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지역 전략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핵심 전략 지역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 서반구다. 전략서에서 서반구는 여러 지역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미국 국가안보의 출발점이자 최우선 전략 공간으로 규정된다. 서반구의 안정 여부가 곧바로 미국 본토의 안전, 국경 통제, 치안, 경제 안정과 직결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서반구의 불안정을 방치한 채 다른 전구에서 전략 경쟁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사라진 북한 비핵화
아시아는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아시아, 특히 인도·태평양을 21세기 세계 경제와 지정학 경쟁의 중심 무대로 규정한다. 미국이 국내 번영을 유지하고 세계적 지위를 지속하려면 인도·태평양에서의 경쟁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경제와 군사력, 혁신 역량, 소프트파워, 그리고 동맹 신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유지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군사적으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의 전쟁 방지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다. 대만은 반도체 생산뿐 아니라 군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을 지지하지 않으며 강력한 억지를 통해 무력 충돌을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1도련선 전반에서 침략을 거부할 수 있는 군사 능력을 유지·강화하고 동맹국의 방위비 증액과 기지 접근 확대를 요구한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과 경제적 파트너 관련 부분에서 일본과 함께 지나가면서 언급되고 있다. 북한 비핵화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유럽은 미국의 전통적 동맹이자 여전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하면서도 현재 유럽이 직면한 위기의 성격을 매우 근본적인 차원에서 재정의한다. 미국 정책 당국자들이 흔히 유럽의 문제를 국방비 부족이나 경제 성장 둔화로 설명해 왔지만 전략서는 그러한 진단이 표면적 현상에 불과하며, 실제 문제는 훨씬 더 깊은 ‘문명적 위기’에 있다고 단언한다.
또 다른 주요 지역인 중동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른 내용이 담겼다. 중동은 더 이상 미국 외교안보의 최우선 전구가 아니라고 명확히 선언한다. 그러나 이는 중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국의 부담을 줄이면서 핵심 이익만 관리하는 단계로 전환됐음을 뜻한다.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원조 중심에서 무역·투자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2022년 바이든 행정부 시절 발간된 『국가안보전략』과 비교하면 무엇보다 전략의 목표가 달라졌다는 점이 분명하다. 이전 전략서에서는 ‘가치 주도의 글로벌 리더십’이 강조됐다면 ‘국가이익 우선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뚜렷하다. 지역적으로 미국 본토를 중심으로 한 서반구 우선주의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유럽에 대한 문명사적 차원의 우려도 특이한 부분이다. 이 전략서는 내용 구성에서부터 문체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정부의 세계관과 전략적 선호를 잘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달라진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을 분석하고 우리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장교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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