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CPR)이 멈춰 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기술이라면 ‘자살응급처치(ASIST)’는 벼랑 끝에 선 마음을 다시 삶으로 되돌리는 기술입니다. 얼마 전 이 마음의 응급처치를 배우는 훈련과정을 소화하며 무심코 스쳐 보낸 전우의 눈빛에 얼마나 절박한 생명의 신호가 담겨 있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이 과정 중 마주한 가장 큰 진실은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이 결코 ‘죽음’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의 내면엔 ‘죽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이 시소처럼 위태롭게 줄다리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깊은 절망 속에서도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알아봐 주기를, 이 끔찍한 고통을 멈춰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초대장(신호)’을 보냅니다.
평소와 달리 어두워진 표정, 소중히 아끼던 물건을 정리하는 행동, 무심코 던지는 “나만 없어지면 될 것 같다”는 말 한마디가 사실은 “제발 좀 도와달라”는 소리 없는 절규였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종종 이 신호를 보고도 주저합니다. ‘혹시나 섣불리 물어봤다가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에이, 설마 아니겠지”라며 외면하곤 합니다.
이번 교육은 분명한 확신을 줬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서성이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회피나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혹시 자살을 생각하고 있니?”라고 명확하게 물어봐 주는 ‘용기 있는 관심’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많은 이가 ‘자살’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길 두려워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이 직접적 질문은 상대를 벼랑 끝으로 미는 게 아니라 오히려 꽉 막혀 있던 마음의 숨통을 틔워 주는 역할을 한다고요. “네가 얼마나 힘든지 진지하게 들어줄 준비가 돼 있다”는 이 질문은 고립된 섬에 갇혀 있던 전우에게 건네는 가장 강력한 위로이자 그를 안전한 곳으로 연결하는 생명줄이 됩니다. 어둠 속에 홀로 웅크린 전우에게 건네는 이 진실한 질문 하나가 세상과 단절됐던 그를 다시 삶으로 연결하는 튼튼한 다리가 돼 주는 겁니다.
어느덧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고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세상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이 마음의 깊은 어둠 속에 홀로 갇힌 누군가에게는 오늘 밤이 1년 중 유독 더 춥고 외로운 시간일 수 있습니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 가장 낮고 누추한 말구유로 내려오셔서 인간의 고통과 아픔을 친히 껴안으셨다는 ‘임마누엘(함께하심)’의 신비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아픈 환부에 손을 대시고 치유하셨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전우의 가장 아픈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 옆에 있는 전우의 눈빛을 한 번 더 깊이 바라봐 주는 건 어떨까요? 혹시라도 평소와 다른 그늘이 느껴진다면 주저하지 말고 다가가 그 마음의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당신이 건네는 그 용기 있는 질문 하나가 누군가에겐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가장 큰 성탄선물이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건 온 우주를 구하는 일과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의 지킴이가 돼 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오늘 만들어 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성탄의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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