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면적 36만㎢에 인구 8400만 명이 사는 유럽의 중심 국가다. 경제적으로는 국내총생산(GDP) 세계 3위, 금 보유고 2위, 무역량 3위, 노벨상 수상자 수 3위를 자랑한다. 국방 분야에선 국방비 세계 8위, 군사무기 수출 5위로 우리와 무기 수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세기 2차례 세계대전을 일으킨 문제 국가이지만 분단의 아픔을 넘어 통일을 성취한 현대사를 통해 우리의 부러움을 사고 있기도 하다.
고등학생이 돼 제2외국어를 배우면서 처음 독일을 만났다. 영어에 밀린 제2외국어라는 위상이 좀 쓸쓸해 보였다. 그럼에도 앞에 붙은 ‘독(獨)’ 자는 외롭지만 멋있게 느껴졌다. 이 과목에 각별한 관심이나 노력을 기울였던 건 아니지만 나중에 어쩌다 대학 전공으로 선택했고, 인연은 평생 직업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지내던 어느 날 새삼 ‘독일’이란 나라 이름이 좀 생뚱맞아 보였다. 왜 독일일까? 현지에선 ‘도이치’ ‘도이칠란트’라고 하고 다른 국가들은 이 나라를 자신의 사연을 담아 ‘저머니(Germany)’ ‘알르마뉴(Allemagne)’ ‘더이치(德意志)’ ‘도이츠(獨逸)’ 등으로 부르는데 우리는 왜 독일일까.
차차 알게 된 경위는 이렇다. 서양과 직거래하며 그 나라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의 것을 간접 수용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이해하고 명명했다. 중국은 도이치를 스스로의 음가로 ‘더이츠(德意志)’로 표기하고 줄여 ‘더구어(德國)’라고 했다. 일본은 자신의 편의에 따라 ‘도이츠(獨逸)’라고 불렀다. 먼저 중국에서 독일을 만난 우리는 더이츠와 더구어를 우리 음으로 읽어 ‘덕의지’ ‘덕국’ 등으로 부르다가 세월이 흘러 그 창구가 일본으로 바뀌면서 도이츠를 한자음으로 발음해 ‘독일’이라고 지칭하게 됐다.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영어 소릿값을 한글로 표기하는 경향이 생겨 많은 국가가 다시 그 이름을 바꿨다.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이탈리아가 그런 경우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원어 국명이나 현지 지명이 아니라 제3국 사례를 빌리는 큰 틀이 바뀐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튀르키예’나 ‘조지아’처럼 자국의 요구를 수용해 현지 발음으로 나라 이름을 바꾼 것은 금석지감을 느낄 일이다.
바른 이름의 중요성과 관련해 곧잘 공자의 정명론이 인용된다. 제자 자로가 공자께 장차 정사를 맡게 되면 무엇부터 하겠냐고 묻자 먼저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했다는 『논어』의 이야기다. 혼란한 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첫걸음이 이름을 바로잡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바르지 않고, 말이 바르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고, (…) 마침내 백성들이 손발 둘 곳을 모르게 된다고 얘기했다.
우리가 쓰는 많은 말의 배경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어 정확한 의미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모든 학문은 용어와 개념의 설명, 이해라고 하겠는가. 복잡한 학문용어는 물론 언급한 국명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생성 배경이나 변화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란 근본 없는(?) 이름이 불편해 관련 학회에서 학회명을 바꾸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독일’을 ‘도이치’로 변경하는 것이었는데, 전체 회원들의 뜻을 모으는 데 이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운 순간이고,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다.
그때 이 이름에 대한 마음의 불편함을 넘어설 수 있었다면 지금 사람들은 ‘도이치’라는 이름으로 바른말을 하고 손발 둘 곳을 알고 제대로 일을 이루면서 이 나라에 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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