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를 넘어 군인의 길을 다시 생각하다

입력 2025. 12. 12   15:33
업데이트 2025. 12. 1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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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린 대위 육군정보학교
김효린 대위 육군정보학교



군인으로서 뛴다는 건 늘 정해진 코스만 도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휘관이 “뛰어!” 하면 달려야 하고 “쉬어!” 하면 멈추는, 그래서 처음 마라톤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그걸 왜 해?”였다. 그럴수록 더 궁금해졌다. “자신이 원해 뛰는 길은 어떤 느낌일까?” 

마라톤을 처음 한 것은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초급장교 시절이다. 수색중대는 적보다 더 민첩하게 움직이고, 더 오래 뛰어야 하며, 끝까지 버티는 훈련을 매일 반복한다. 아침마다 5㎞씩 달리는 발걸음 속에 우리 소대원들은 생존력을 단련했다. 나는 매일 뛰었지만 매일 뒤처졌다. 그때마다 “힘내십시오” 하던 소대원들의 응원이 기운을 북돋아 줬다. 우리는 개인이 아니었고 팀이었으며 전우였다. 함께 뛰는 기쁨을 이때 비로소 알게 됐다.

이후 당시 현역이었던 아버지와 국방일보가 주관하는 ‘2023 전우마라톤’에 참가했다. 아버지와 함께한 10㎞는 단순한 레이스가 아니었다. 평소의 부녀 모습이 아닌 전우로서 첫 동행이었고, 군인의 길은 단지 직업이 아니라 전해지는 정신임을 깨달았다. 2024년에는 정보병과 여군 부사관과 다시 전우마라톤에 도전했다. 우리는 같은 박자로 달렸고, 같은 목표를 향해 뛰었다. 혼자 뛰면 기록이 되고 함께 뛰면 전우가 된다. 달리기는 부사관과 대위라는 계급장을 벗고 오직 함께 나아가는 동력이 됐다.

그때부터 ‘뛰는 여군’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프마라톤에 이어 풀코스마라톤까지 도전했다. 그렇게 ‘2025 춘천마라톤’에서 42.195㎞를 3시간46분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 비결은 군인의 훈련과 마라톤의 교차점에서 찾을 수 있다. 유격훈련과 전투체력, PT 시간의 구령과 근육통은 버티는 훈련이자 익숙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마라톤은 구령이 없고 자기 자신과 싸우는 전투다. 쉴 이유는 매일 넘쳤다. 영하의 칼바람이 불 때면 운동화를 신는 손이 망설여졌고, 여름 장맛비에 전투복이 무겁게 들러붙던 날 침대에서 꼼짝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심이 들 때마다 “나는 군인이다. 군인은 포기하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 한계를 부수고 다시 세워 보자”고 되뇌었다. 뛰는 것은 그렇게 군인의 정체성을 다시 정의하게 했다.

근육통과 함께 얻은 깨달음은 마라톤과 군인의 삶은 닮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군인의 삶은 멀고도 고되다. 화려한 순간보다 포기하지 않는 순간의 누적이 모인 군인의 삶, 이 길은 멀기에 굳건해지고 고되기에 단단해진다. 이 길을 걸으며 군인이기에 우리는 자신의 ‘다음 한 걸음’을 만들어 내고, 고된 시간 속에서 오늘도 묵묵히 군인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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