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시절 사격선수로 선발돼 집중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사격교관의 한마디는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표적을 보지 마라. 조준선 정렬에 더 신경 써라. 표적은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반복해 사격장을 오가다 보니 그 의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목표만 바라보고 달리는 것보다 내 상태를 먼저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사격에서 조준선 정렬을 바로잡고 목표를 겨누는 과정을 ‘영점을 잡는다’고 한다. 이는 방아쇠를 당긴 뒤 탄환이 의도한 방향으로 날아가는지, 의도한 것과 결과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이 과정이 틀리면 아무리 많은 사격을 해도 표적을 맞힐 수 없다. 삶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둘 것인지 기준을 분명히 세우는 일이 인생의 영점을 잡는 일이다.
사람들은 경쟁의 장에 들어서면 마음이 바빠진다. ‘열심히 살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기대는 잠시 위안을 주지만, 어느 순간 묻는다. “이렇게 사는 나는 행복한가?” 문제는 그 질문에서 정작 ‘나’라는 주체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목표는 세웠지만 목적은 세우지 않아서다. 목표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면 목적은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다. 목적이 빠진 목표는 1000발을 쏘고도 표적을 한 번도 맞히지 못하는 사격과 같다. 노력은 많았지만 방향이 어긋난 것이다.
결국 삶의 본질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사회는 돈과 지위, 명성, 외형적 성취를 성공의 잣대로 제시한다. 그 기준에 맞추다 보면 나의 가늠자와 가늠쇠가 외부에 고정되고 진짜 원하는 삶에서 멀어진다. 그렇다면 기준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방법은 단순하다. 먼저 삶의 최상위 기준 하나를 선택한다. ‘관계의 질’ ‘자유로운 시간’ ‘정직한 자기표현’ ‘타인에게 기여’처럼 삶의 중심이 되는 요소면 된다. 그다음 이 기준을 행동으로 바꾼다. ‘주 3회 가족과 식사하기’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 ‘가치와 맞지 않는 제안은 정중히 거절하기’처럼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기준은 손에 잡히고 측정 가능해야 유지된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영점은 한 번 맞추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람이 불면 총구도 흔들리듯이 삶도 계속 변한다. 그래서 주기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하루 5분의 성찰, 일주일에 한 번의 목표 점검, 분기별 가치 확인 같은 반복이 영점을 유지하는 힘이다. 행복과 불행을 지나치게 의식하기보다 그사이의 중심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행복에 집착하면 불안이 커지고, 불행하다고 자조하면 이미 손에 쥔 행복도 보지 못한다. 균형은 삶의 기초체력이다.
기준을 세울 때는 측정 가능성과 유연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너무 모호하면 실행하기 어렵고, 너무 단단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관계의 질’을 기준으로 삼았다면 ‘주 2회 깊은 대화’ 같은 지표로 실천하고, 상황이 바뀌면 지표도 자연스럽게 조정하면 된다. 기준은 나를 묶어 두는 규칙이 아니라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좌표여야 한다.
영점 없이 사는 삶은 표적을 맞히지 못한다. 반대로 기준을 세우고 점검하며 때로는 다시 조정하는 사람은 조용하지만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간다. 인생의 영점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점검과 선택의 반복에서 만들어진다. 그 반복이 쌓여 마지막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왔다.”
삶은 쏘는 것이 아니라 조준하는 일이다. 영점이 맞은 삶은 속도가 아니라 정확성으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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