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용사들의 처절함과 해학

입력 2025. 12. 11   16:05
업데이트 2025. 12. 1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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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명 육군대위 국방정신전력원
최세명 육군대위 국방정신전력원



“군인은 역사의 마니아가 돼야 한다.” 이전에 지휘관께서 늘 강조한 말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무릇 군인은 전적지 답사와 전사 탐독을 통해 전쟁사를 아는 게 실전적 통찰력을 기르는 필수요소임을 깨달았다.


전쟁사의 재미에 빠져 매년 이맘때면 6·25전쟁 당시 동부전선에서 가장 치열했던 장진호전투(1950년 11월 27일~12월 13일)를 떠올린다.

당시 장진호의 겨울은 낮 영하 20도, 밤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함 그 자체였다. 혹한은 단순한 추위가 아닌 생존을 위협하기까지 한다. 기관총은 연사되지 않고 차량 엔진은 얼어붙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장병들은 추위 속에서 제대로 씻지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불을 피우면 포탄과 총격이 날아들어 음식을 데워 먹기도 어려웠다. 이들은 불결한 환경에서 눈과 덜 익힌 음식을 먹었다. 이로 인해 노로바이러스나 이질 등 질병의 위험에 노출됐다.

극심한 추위는 인간의 면역체계를 무력화한다. 체온이 섭씨 1도만 떨어져도 면역세포의 활동성이 급격히 둔화하고, 혈관이 수축돼 몸의 방어세포(백혈구)가 감염 부위로 신속히 이동하기 어려워져 작은 세균에도 쉽게 노출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비극적인 전투 속에서도 임기응변의 일화가 있었다. 당시 미국 해병대원들은 박격포탄을 ‘투시롤(Tootsie Roll)’이란 은어로 불렀다. 탄약이 바닥나자 한 통신병이 후방 보급부대에 “투시롤(박격포탄)이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긴급지원을 바란다”고 무전을 보냈다. 보급부대는 이 은어를 알지 못했고, 병사들이 혹한에 투시롤 캐러멜 사탕을 간절히 원한다고 오해했다. 결국 수송기에서 수백 상자의 투시롤 사탕이 투하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장병들은 낙심했고 원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를 나름의 생존에 활용했다. 사탕은 추위를 견딜 고열량 에너지원으로 이용하거나 구멍 난 유류탱크를 막는 응급접착제로 활용됐다. 투시롤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사용처를 찾아 생존에 기여했다.

이처럼 처절함과 해학이 교차했던 장진호전투의 배경은 혹한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철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장진호의 전훈을 바탕으로 온기 및 위생 유지를 철저히 하는 것만이 면역사령탑을 지키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를 위해 체온 관리와 더불어 질병을 막기 위해 식품을 완전히 익혀 먹고 손을 자주 씻는 기본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또한 고난 속에서도 투시롤처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를 본받아야 한다. 모든 생존과 전술은 상황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통찰력에서 시작된다. 우리 모두 유연한 사고로 따뜻하고 건강한 겨울을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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