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in 국방일보 - 1991년 12월 17일 자
|
군 훈련은 항상 위험을 동반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때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타인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특히 항공기 사고는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국방일보 1991년 12월 17일 자 지면에는 비극적 항공기 사고 기사가 게재됐습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더 큰 인명피해를 막은 고(故) 이상희(학군 17기) 대위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고는 앞서 12월 13일 발생했습니다. 조사 중 발견된 블랙박스로 이 대위의 숭고한 희생이 밝혀졌습니다.
기사는 “13일 광주광역시 상공에서 훈련비행 중 공중추돌 사고로 F-5A기와 함께 서구 유덕동 덕흥마을 옆에 추락, 숨진 고 이상희 대위는 추돌 직후 낙하산 탈출 기회가 있었으나 기체가 민가를 덮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다가 산화한 것으로 밝혀져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사에 의하면 사고 당일 오후 훈련을 마치고 광주 공군기지로 착륙을 시도하던 F-5A 전투기 두 대가 기지 인근 상공에서 공중추돌해 추락했습니다. 그중 한 대에는 이 대위가 탑승해 있었습니다. 그는 기체가 가옥이 밀집한 마을을 향해 급강하하자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고, 결국 장렬하게 산화했습니다.
기체는 덕흥마을에서 불과 10여 m밖에 떨어지지 않은 미나리밭에 추락했습니다. 뒤늦게 찾아낸 블랙박스엔 절체절명의 순간 이 대위가 외친 마지막 육성이 녹음돼 있었습니다. 기사는 “추락한다, 탈출하겠다. 전방에 마을이 보인다. 탈출이 불가…”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기사는 추돌한 비행기 중 한 대가 추락지점을 찾듯이 방향을 바꿨고, 만약 그대로 추락했더라면 덕흥마을 민가를 덮쳐 엄청난 피해가 생겼을 것이라고 예상한 주민 목격담도 함께 보도하고 있습니다.
사고 경위가 밝혀지자 이 대위를 향한 전 국민의 추모가 이어지며 그의 희생을 기리는 분위기가 확산됐습니다. 광주 공군기지에선 전 장병 및 군무원이 뜻을 모아 ‘상희공원’을 조성하고 1992년 1월 21일 현석비 제막식을 했습니다. 제막식에선 이 대위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이 추서됐습니다. 현석비는 2013년 11월 22일 당시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시설로 지정됐습니다.
1992년 2월에는 덕흥마을 주민들과 광주시의 지원으로 ‘이상희 대위 추모비’가 건립됐습니다. 1995년엔 이 대위가 태어나고 자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상희공원’이 조성돼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영선 기자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