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캐럴이 울리면 빛으로 물드는 첩첩산중에 산타마을이 있대요

입력 2025. 12. 11   16:58
업데이트 2025. 12. 1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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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남들은 잘 모르는 시크릿 겨울 봉화 

서울서 차로 세 시간·기차로 네 시간 남짓

태백산맥 오가는 열차 중간 기착지 ‘분천역’
스위스와 자매결연 맺고 ‘산타마을’로 변신
루돌프 조형물·썰매 체험장 웃음소리 가득 

멸종 위기 백두산호랑이 볼 수 있는 수목원

금강소나무 숲·천년고찰 청량사
동심의 세계로 가는 비밀의 정원도

가을이 오나 싶더니 초겨울 추위가 연일 온몸을 파고든다. 겨울이 되면 문득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굴뚝으로 내려온다는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며 잠 못 이루던 밤, 첫눈이 내리면 뛰쳐나가 눈싸움하던 골목길. 어른이 돼서도 그런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경북 봉화군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봉화는 태백산맥이 만들어 낸 첩첩산중 한가운데 숨어 있다. 서울에서 차로 3시간 남짓, 기차로는 4시간 가까이 걸린다. 쉽게 닿을 수 없는 거리여서 더 특별하다. 깊은 산골짜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부터 눈 덮인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풍경, 겨울밤 반짝이는 조명 아래 펼쳐지는 작은 축제까지. 올 연말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봉화행 열차에 몸을 실어 보자.

 

분천역 일대에 조성된 산타마을의 밤 풍경.
분천역 일대에 조성된 산타마을의 밤 풍경.


분천역, 협곡에 내려앉은 크리스마스 

영동선 철길을 따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면 분천역이 나타난다. 한때 이 작은 간이역은 태백산맥을 오가는 열차들의 중간 기착지였다. 새 터널이 뚫리면서 열차 운행이 줄었고, 역은 한동안 잊힌 공간이 됐다. 그러다 뜻밖의 인연이 찾아왔다. 스위스 알프스 자락의 체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맺게 된 것이다. 협곡 사이에 자리한 두 역의 닮은꼴에서 출발한 이 결연은 분천역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지금 분천역 일대는 ‘산타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매년 겨울이면 역사 전체가 수만 개의 조명으로 뒤덮이고, 대형 트리가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선다. 낮에는 소박한 시골역의 모습이지만, 해가 지면 동화 속 마을로 변신한다. 루돌프 조형물 사이를 거닐고, 썰매 체험장에서 눈밭을 달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골짜기에 울려 퍼진다.

분천역 야경을 제대로 즐기려면 해 질 무렵 도착하는 것을 권한다. 어스름이 내려앉을 때 하나둘 켜지는 조명이 가장 아름답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더할 나위 없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불빛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잠시나마 현실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다.

 

 

백두대간수목원에 살고 있는 호랑이. 
백두대간수목원에 살고 있는 호랑이. 


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가 사는 숲


봉화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특별한 존재가 있다. 백두산호랑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멸종 위기에 처한 한국산 호랑이의 종 보존을 위해 2018년 문을 열었다. 일반 동물원과는 결이 다르다. 좁은 우리 대신 넓은 방사장을 조성해 호랑이가 야생에 가까운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했다.

수목원 규모도 상당하다. 방문자센터에서 호랑이숲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걸릴 만큼 넓다. 서두르지 않고 산책하듯 천천히 거닐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겨울 수목원의 풍경도 나름의 운치가 있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간간이 쌓인 눈 위로 찍힌 동물 발자국들. 걷는 게 부담스럽다면 트램(노면전차)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호랑이숲에 다다르면 5.5m 높이의 울타리 너머로 호랑이들이 보인다. 시베리아 벌판부터 백두대간까지 누비던 녀석들에게 한겨울 추위는 오히려 반가운 손님이다. 눈 위를 성큼성큼 걷거나 양지바른 곳에 드러누워 낮잠을 청하는 모습이 의외로 평화롭다. 맹수의 위엄보다 커다란 고양이 같은 느긋함이 느껴진다. 호랑이숲 관람은 오후 4시까지다. 적어도 오후 3시까지는 입장하길 권한다.

 

다양한 목재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봉화 목재문화체험장.
다양한 목재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봉화 목재문화체험장.


목재문화체험장, 숲의 향기를 손에 담다 

봉화는 예부터 좋은 소나무가 나는 고장으로 이름났다. 특히 춘양면 일대에서 자라는 금강소나무는 ‘춘양목’으로 불리며 궁궐 건축에 쓰일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속이 붉고 단단하며 결이 고와 목공예 재료로도 최상품이다.

봉화 목재문화체험장은 이런 목재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관에는 건축과 가구에 쓰이는 100여 종의 나무가 소개돼 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향을 맡으면서 나무마다 다른 개성을 느낄 수 있다.

 

청량산 중턱에 위치한 천년고찰 청량사의 오층석탑.
청량산 중턱에 위치한 천년고찰 청량사의 오층석탑.


청량산, 바위와 소나무가 빚은 수묵화 

봉화 하면 청량산을 빼놓을 수 없다. 경상북도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 산은 기암절벽과 금강소나무 군락이 어우러진 명승지다. 낙동강 상류가 산자락을 휘감아 흐르고, 깎아지른 바위 사이로 암자들이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있다. 마치 신선이 노닐 법한 풍경이다.

산 중턱에는 청량사가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한때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으나 조선시대를 거치며 지금처럼 아담해졌다. 유리보전에 모셔진 종이 불상 ‘지불’, 공민왕이 직접 썼다는 현판이 남아 있다. 오층석탑에는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고 한다.

오르는 길은 숨이 턱끝까지 찰 만큼 가파르지만, 도착하는 순간 그 수고로움을 잊게 만든다. 절 마당에 서면 사방으로 솟은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겨울에는 눈 쌓인 바위와 푸른 소나무의 대비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찬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잠시 멍하니 서 있어도 좋다.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봉화 청량산 자락에 위치한 카페 홀리가든.
봉화 청량산 자락에 위치한 카페 홀리가든.


카페 홀리가든, 산속에 숨은 비밀정원 

청량산 여행의 마무리는 조용한 카페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 산자락 마을 가장 깊숙한 곳에 ‘홀리가든’이 있다. 펜션을 겸하는 이 카페는 아는 사람만 찾는 공간이다. 주말에만 문을 열고,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요한 시간이 보장된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면 통유리 너머로 청량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창가 자리에 앉으면 웅장한 산세가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걸린다.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하지만, 겨울이 특히 좋다. 눈 덮인 봉우리와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만들어 내는 정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카페 뒤편엔 아담한 정원을 품고 있어 날이 좋으면 잠시 산책을 즐겨도 좋다.

메뉴는 홍차세트와 커피세트 2가지다. 둘 다 2만 원이며, 음료와 함께 간단한 다과가 나온다. 운영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문을 연다. 방문 전 반드시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

 

필자 김정흠은 여행작가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주로 여행 카테고리의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국내외 여행 매체 등과 함께 다채로운 여행 콘텐츠를 선보인다.
필자 김정흠은 여행작가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주로 여행 카테고리의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국내외 여행 매체 등과 함께 다채로운 여행 콘텐츠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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