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직업적 고뇌가 담긴 25년의 진료 노트

입력 2025. 12. 10   17:18
업데이트 2025. 12. 1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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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는 여정에서 의술의 힘을 넘어 연대의 힘 깨닫고
답을 찾는 젊음에게 정해진 성공 아닌 삶의 의미 깨닫게

진료실·거리 오가며 취약계층 환자 치료
사회가 정한 성공보다 진정한 가치 선택
의사란 타인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존재
사람을 살게 하는 치유는 기술 아닌 사랑

 

나는 언제라도 너의 편이다 / 최영아 지음 / 빛의서가 펴냄
나는 언제라도 너의 편이다 / 최영아 지음 / 빛의서가 펴냄

 


오늘날 ‘성공’은 안정적인 직업과 높은 연봉으로 정의되곤 한다. 면접 준비, 스펙 쌓기, 자격증 취득으로 채워진 청년들의 일상은 끊임없는 경쟁과 불안 속에서 흘러간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젊은 세대에게 잠시 멈춰 서서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 출간됐다. 

신간 『나는 언제라도 너의 편이다』는 25년간 밤낮없이 진료실과 거리를 오가며 병원 문턱조차 밟기 어려웠던 취약계층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전념해온 한 의사의 진료 기록이다. 의사가 되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초등학생을 위한 의대 입시반마저 등장하는 요즘 세상에서 저자는 수십 년간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 100만 원 남짓을 받으며 어려운 이웃의 삶을 도와왔다.

물론 그 역시 한때는 고소득 전문직의 삶을 꿈꿨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청량리역에 무료급식 봉사를 나가면서 또 다른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곳에는 빗물에 젖은 밥으로 허기를 달래는 수백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중 상당수는 당장 치료가 필요할 만큼 아픈 상태였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에 가지 못했다. 가장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정작 가장 병원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현실을 그 자리에서 마주한 것이다.

“왜 이 사람들은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죽을 만큼 아파도 치료받지 못한 채 길에서 생을 마감해야 할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이후 대학병원 스카우트 제의와 교수직 등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성공의 길’을 스스로 내려놓고, 거리 위의 환자들을 만나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내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자마자 청량리 뒷골목에 무료병원을 세웠고, 병원 사택에서 먹고 자며 밤낮없이 취약계층 환자들을 돌봤다. 병원을 찾는 환자가 하루에 100명도 넘어 늘 격무에 시달렸지만 힘듦보다 뿌듯함이 더 컸다.

몸과 마음이 힘든 상태의 환자를 대하는 일은 늘 신중하고 어렵다. 술에 취해 병원 기물을 부수는 사람, 진료 중 욕설을 퍼붓고 위협하는 사람,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른 이들까지 다양한 사람이 그의 진료실을 찾는다.

“무섭다고 해서 피하거나 도망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의사라면 반드시 병의 무게를 먼저 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과거가 어떻든 내게는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거리의 노숙인부터 집을 나온 청소년, 산재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 죽음을 목전에 둔 독거노인 등 각자의 사연을 가진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는 현장을 함께하며 ‘돈을 내고도 못 배울 공부’를 했다. 그 과정에서 의사란 단지 병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취약계층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로 여기지만 저자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 가운데에는 의사, 사장, 부자까지 한때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던 사람도 많았다. 한순간의 실패와 좌절이 이어져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때,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현장에서 해답을 찾았다. 치유에 있어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따뜻한 손길과 사람의 온기다. 각자도생에 익숙해진 오늘의 사회에서 책은 ‘사랑’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는지 증명하며, 경계를 넘어선 공존과 따뜻한 돌봄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한편 성과가 중시되는 현실에서 그의 삶은 ‘사회가 정한 성공’이 인생의 전부는 아님을 조용히 일깨운다. 정해진 길 대신 자신의 기준으로 삶의 방향을 정한 그는 누군가의 곁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깊은 보람으로 이어졌는지를 지금까지 걸어온 길로 보여준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할 때 만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지 않고 경험해 알아차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경쟁 사회에 쉼 없이 달리는 청년들에게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은가’란 질문을 남기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단단한 길잡이가 돼 준다.

저자가 한 권의 책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 사회가 외면 대신 ‘함께 사는 선택’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책은 치료의 기술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인간을 향한 연대의 의미를 되묻는 기록이다.

김세은 인턴기자/사진=빛의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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