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서도 선명한 장면이 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비행기 한 대가 구름을 스치며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늘 하늘을 동경했다. 끝없이 높고, 때마다 다른 색과 모습을 보여주며 가슴을 뛰게 하던 하늘은 어린 시절부터 내게 특별한 존재였다. 성인이 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입사했을 때 그 동경은 현실이 됐다. 각종 항공기 부품을 도면에 맞춰 조립하고 가공하는 업무는 새로운 배움의 연속이었고, 내 손을 거친 기체가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은 벅찬 감동이었다.
업무에 매진한 결과 해병대 상륙공격헬기(MAH) 시제기, T-50과 KF-21 등 다양한 항공기의 제작에 참여했다. 납기 일정 안에 작업을 마쳐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고 기술적 난관도 적지 않았지만 완성된 항공기가 굉음을 내며 이륙할 때 모든 어려움은 성취감으로 바뀌었다. 특히 상륙공격헬기는 해병대의 미래 공중화력을 책임질 상징적인 항공기였다. 시제기가 초도비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작은 부분이나마 힘을 보탰다는 생각에 깊은 울림이 있었다.
병역특례 기회가 있었지만 무엇인가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 회사에서 해병대를 전역한 동료가 업무차 방문한 해병대항공단 소속 간부에게 경례하는 모습을 보며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각 잡힌 팔각모, 날카로운 동작, 흔들림 없는 표정과 빨간명찰까지,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해병대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해 먼저 나아가는 선봉군으로서 역할에 매료됐다. 나는 신병 1323기로 입대했다.
해병대교육훈련단 정문을 처음 넘어설 때 약속했다.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자. 살아오면서 내본 적 없는 가장 큰 목소리와 가장 굳은 다짐으로 훈련에 임하자.” 6주간의 강도 높은 교육훈련은 결코 쉽지 않았으나 약속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른 아침 눈 뜨는 것을 힘들어하던 습관을, 매일 새벽 5시부터 완전한 복장을 갖추고 일과를 준비하는 훈련교관들을 보며 극복했다. 천자봉 고지를 향하는 길에서, 선배 해병들이 흘린 피와 땀의 의미와 전우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11m 높이의 모형탑에서, 동료들의 응원이 있다면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수료를 앞둔 지금, 처음 정문을 넘으며 했던 약속을 떠올린다. 실무로 나아가서도 자신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대한민국 해병대의 일원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겠다. 사회로 돌아가서도 하늘 위를 나는 해병대 상륙공격헬기를 본다면 지금의 다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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