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이 찾아왔다. 최전방 전선에는 혹독한 겨울이 빠르게 자리 잡았다. 지난 10월부터 11월 28일까지 40일간 백마고지 일대에서 진행한 유해발굴사업은 잠시 쉬어간다. 땅이 얼어붙는 겨울에는 호미와 붓으로 섬세하게 진행하는 유해발굴을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2년 이후 중단한 뒤 올해 재개한 발굴 현장에선 유해 25구와 전사자 유품 1962점을 수습했다. 앞서 우리 군은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에서 유해 491구를 발굴했다. 유해발굴 첫해 7월 여름날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현장에 도착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수십 미터 구간 참호에 묻혀 있던 유해 25구가 눈앞에 다가왔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반세기 전 위태로운 나라와 국민을 지켜내고자 했던 숭고한 희생 앞에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6·25전쟁에서 산화한 호국영령은 반드시 귀환해야 한다. 반세기 훌쩍 넘겨 돌아온 가족을 맞이하는 유족의 눈물이 얼마나 뜨거운지 가늠하기 어렵다. 아들을 기다리는 노모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처럼 하루가 급한 유해발굴 사업은 2022년 12월 이후 긴장이 높아진 한반도 정세로 한동안 멈춰 섰다. 지체할 수 없다. 비무장지대에는 국군 전사자 1만여 명의 유해가 지난 세월 30㎝ 이상 쌓인 차가운 땅 아래 감춰져 있다.
3년여 만에 재개한 백마고지 유해발굴 소식에는 미국을 비롯한 유엔참전국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비무장지대에는 미군 미수습 전사자 1010여 명을 비롯한 유엔군 전사자 1060여 명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백마고지는 6·25전쟁 당시 가장 많은 전사자가 발생한 지역이다. 고지 정상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대혈전을 치르고 국군이 승리했다. 이러한 희생이 있었기에 유해발굴을 지속하면 더 많은 전사자 유해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나서야 한다. 북한은 2018년 9월 남북 공동 유해발굴을 시범 진행하기로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이행 과정에는 나서지 않았다. 이후 우리 군 단독으로 유해발굴을 하고 있다. 군사분계선 이남에서 북한군과 중공군 유해를 발견하듯 북한군 지역에서 국군 유해를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 한 분이 돌아오는 순간까지 유해발굴은 계속돼야 한다.
인도적 협력은 평화를 구축하는 노력의 큰 걸음이 될 수 있다.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에 남북한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또한 북한과 미국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 기회도 마련해야 한다. 찬 바람이 잦아들고 동토가 녹는 경칩이 오면 비무장지대 모든 지역으로 유해발굴을 이어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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