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문화체육부 산하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다듬은 말로 ‘지도층 의무’라고 한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지난달 말 해군 장교로 임관한 재계 4세가 크게 회자되고 있다. 주인공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인 이지호(24) 소위다. 이 소위는 지난 9월 15일 해군사관후보생으로 입대했다. 2000년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과 미국 복수국적을 보유했지만 군 입대를 위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며 화제를 모았다.
입대 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언론 또한 이 소위 주특기부터 첫 외박, 임관 일자 등 군 생활 하나하나에 주목했다. 그래서일까. 사관후보생 동기들 사이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은 모범 그 자체였다고 한다.
이 소위는 11월 28일 해군 학사사관후보생 139기 임관식에서 기수 대표로 제병 지휘를 맡았다. 후보생 동기들이 압도적으로 추천해 준 결과다.
임관식에는 이재용 회장이 모친인 홍라희 여사와 함께 참석했다. 어머니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과 외할머니인 박현주 부회장, 이모 임상민 대상 부사장 등도 함께했다.
임관식에서 이 소위는 ‘고통 없이 인간은 진화하지 못한다, 그러니 즐겨라’란 그의 좌우명을 소개했다. 그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왜 입대를 선택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 소위는 앞으로 39개월간 해군 통역장교로 복무하게 된다. 해외군과 연합훈련이 많은 해군 특성상 그가 군에서 쌓은 경험과 인연은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이 소위의 입대가 화제가 된 것은 일반인도 외국 국적을 포기하고 입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병역기피 현상이 수그러들지 않은 상황에서 이 소위의 자발적 입대는 큰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병무청이 2021년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병역의무 기피자를 집계한 결과 총 312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역 기피는 징병제 국가에서 병역의무를 피하려는 일련의 행위로, 현행 대한민국 병역법상 징병·소집 거부는 그 자체가 불법이다.
병무청은 2015년 7월 1일부터 국내외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의무를 기피하는 사람들의 인적사항 등을 공개하는 병역 기피자 공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병역 기피 발생을 예방하고 성실한 병역이행을 유도해 사회 전반에 공정한 병역이행 문화가 확산하는 것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병역 기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매우 냉정하다. 2002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며 병역을 기피한 가수 유승준이 대표적인 사례다.
1997년 데뷔 이후 가요계에서 큰 인기를 누린 유승준은 당시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최종 4급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2002년 1월 미국으로 출국한 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며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했다. 병무청은 법무부에 병역을 기피한 유승준의 입국 금지를 요청했고, 법무부가 이를 받아들이며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한국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군이 징병제인 현 제도를 유지하는 이상 앞으로도 정계, 재계 등 사회 지도층 자제들의 입대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이 소위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갈 것인가는 온전히 그들에게 맡겨진 몫이다. 다만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우리 사회는 물론 본인에게도 큰 약점이 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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