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무기의 세계 - ‘컨스텔레이션급’ 프로그램이 주는 시사점
2010년대 전력 확보 나섰던 미 해군
성능 입증된 동맹국 함정 기반 추진
이탈리아 베스트셀러 FREMM급 선정
과도한 요구에 외형 커지고 성능 저하
성급한 건조, 작업 지연·비용 부담 초래
전면 재검토 선언…최소 10년 전력 공백
우수한 건조 능력 보유 한국에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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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군은 여전히 세계 1위의 해군력을 갖고 있지만 쇠락하고 있다. 총 톤수로는 여전히 세계 1위지만 척수로는 이미 중국에 뒤처졌다. 중국 해군의 건함 건조 속도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5일 존 펠런 미 해군성 장관의 발표는 자못 충격적이었다. 미 해군 함대 재건의 핵심이자 차기 주력 호위함 사업인 ‘컨스텔레이션급(Constellation-class)’ 프로그램을 사실상 취소하고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번 최신 무기의 세계에서는 20척을 목표로 했으나 이제 2척만 남게 된 컨스텔레이션 호위함의 기술적 특징과 실패의 원인, 그리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분석해 본다.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선택한 ‘검증된 설계’
2010년대 미 해군은 혁신적인 모듈형 설계와 고속 성능을 추구했던 LCS(Littoral Combat Ship) 프로그램이 잦은 고장과 낮은 생존성으로 실패하자 이를 만회할 새로운 소형 전투함(Small Surface Combatant) 확보에 나섰다. 미 해군은 모듈형 전투장비 시스템, 고속 항주장비 등 LCS에 적용하려 했던 혁신적인 설계가 실패 원인이라고 판단해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함정을 설계하는 대신 이미 동맹국에서 성능이 입증된 함정을 기반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미국 오스탈, 제너럴 다이내믹스, 헌팅턴 잉글스, 록히드마틴 등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2020년 4월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사의 FREMM급(카를로 베르가미니급) 호위함이 선정됐다. FREMM급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해군이 주력으로 운용 중인 6000톤급 함정이다. 대잠·대공·대함 능력이 균형 잡힌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이미 18척이나 건조된 베스트셀러 호위함이었다. 미 해군은 이 선체에 자국의 검증된 이지스 전투체계와 무장을 얹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하려 했다.
기술적으로 컨스텔레이션급은 강력했다. FFG-62라는 번호가 붙여진 컨스텔레이션급은 만재 배수량 7408톤, 길이 151m, 폭 19m, 최고 속력 27노트 193명의 승조원이 탑승하는 중대형 호위함으로, 우리 해군의 충남급 호위함보다 두 배 가까이 큰 배로 완성됐다. 추진 시스템은 고속 기동에는 가스터빈이, 저속에는 디젤 발전기와 모터로 추진하는 하이브리드(CODLAG) 방식을 채용했다. 고속 성능과 연비, 저소음 작전이 모두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전투체계는 이지스 베이스라인 10(Aegis Baseline 10)을 사용하고, 여기에 능동 위상배열(AESA) 레이다(AN/SPY-6(V)3F)를 장착했다. 알레이버크급 이지스함보다 레이다 크기가 작지만 이지스 구축함의 합동교전능력(CEC)을 그대로 이용하고 RIM-162 ESSM 대공 미사일, RIM-174 스탠더드 대공 미사일 등을 탑재할 수 있어 제한된 함대 방공능력도 갖췄다. 여기에 SQQ-89(V)16 종합 소나 체계는 선체 소나와 예인식 가변심도 소나(VDS)를 통합·운용해 잠수함 탐지 능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구현했다.
다만 공격수단의 경우 BAE Mk.110 57㎜ 함포와 콩스버그(Kongsberg) NSM 미사일을 채택,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의 127㎜ 함포나 RGM-84 하푼(Harpoon) 미사일보다는 작고 가벼운 무장을 채택했다. 다만 57㎜ 함포는 속사능력이 우수해 대공 방어능력이 뛰어나고, NSM 미사일은 스텔스 능력을 갖춰 침투능력이 우수하다.
85% 호환성 목표는 실패, 15%만 남아
그러나 ‘검증된 설계’의 장점은 실현되지 못했다. 미국 회계감사국(GAO) 보고서에 따르면 당초 미 해군은 원형인 FREMM급과 85%의 설계 공통성을 유지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실제 설계를 진행하며 공통성은 15% 수준으로 급락했다. 사실상 껍데기만 비슷할 뿐 완전히 새로운 배를 만든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미 해군의 과도한 요구사항이었다. 무장과 장비를 미국산으로 바꾸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미 해군은 생존성 등 자신들의 규격에 맞추기 위해 설계 변경만 790건 이상을 제작사에 요구했다. 배는 원형보다 길어지고 넓어졌으며, 무게는 당초 계획보다 10% 이상인 약 760톤 증가했다. 이는 속도 저하와 발전 용량 부족 우려를 낳았다.
설상가상으로 미 해군은 상세 설계가 80%밖에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성급하게 건조를 시작했다. 짓는 도중에 도면이 바뀌니 작업은 지연되고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척당 건조 비용은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15억 달러 이상으로 치솟았고, 인도 일정은 36개월 이상 지연돼 2029년 이후에나 첫 배를 볼 수 있게 됐다.
한국 방위산업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컨스텔레이션급의 좌초는 중국 해군의 팽창에 맞서 ‘355척 함대’를 건설하려던 미국 전략에 치명타를 입혔다. 구축함의 부담을 덜어줄 허리 전력이 최소 10년 가까이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미 해군은 이제 남은 예산으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거나, LCS를 개량해 수명을 연장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미 해군의 이러한 전력 공백은 한국 조선업계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미 해군성 장관이 언급한 ‘더 빠르고 저렴한 대안’으로 한국의 우수한 건조 능력이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거울삼아 기술적 완성도와 사업 관리의 균형을 잡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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