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제로클릭’ 소비 혁명
‘탐색-비교-선택’ 소비 중간 과정
AI가 대신하며 ‘인지-구매’ 직행
기존 구매 패러다임 변화 초래
상품 홍수 속 맞춤형 제시 장점에도
프라이버시 침해·주체성 상실 우려
클릭은 없어지지만 고민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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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쇼핑 생태계에서 거대 기업 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쇼핑 사이트 아마존은 11월 초 퍼플렉시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퍼플렉시티에서 ‘코멧’이라는 AI에이전트형 브라우저를 출시했는데 해당 브라우저로 쇼핑하면 사용자가 아마존 웹사이트를 시간을 들여 살펴보지 않아도 AI에이전트가 알아서 탐색 후 추천 목록을 비교·정리해주고, 현재 보고 있는 상품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구매할 수 있는 옵션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아마존은 이러한 퍼플렉시티의 에이전트가 ‘불법 침입’이라고 판단했다. 에이전트로 인해 소비자들의 직접 접속 및 탐색이 줄어들어 아마존 웹사이트 내 광고 수익이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개인들의 비서 역할을 하게 되면서 디지털 생활에서 사용자의 행동이 변화하고 있다. 클릭 한 번 하지 않고도 원하는 정보를 얻고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되는 ‘제로클릭(zero-click)’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제로클릭이란 용어가 가장 먼저 등장한 곳은 ‘검색’이다. 분석 기관에 따라 구체적 수치는 다르지만 검색 시장에서 구글은 10년 넘게 90%대 점유율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대중화된 2024년 말부터 80%대로 점유율이 낮아졌고, 대신 AI를 통한 검색 점유율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분석업체에서는 챗GPT, 단일 서비스의 점유율만으로도 약 9%에 해당할 것이라 추산하기도 했다.
검색 트래픽을 빼앗기고 있는 검색 엔진들은 오히려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AI 오버뷰’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전까지는 검색어를 넣으면 나오는 링크들을 일일이 클릭해 내용을 살펴봐야 했지만 지금은 AI가 여러 정보를 종합해 검색 결과창 상단에 박스 형태로 답변을 제시한다. 특히 추가적인 검색이 필요 없도록 완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별도 링크를 클릭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한 분석업체에 따르면 ‘날씨’ 검색의 경우 사용자의 85%가 클릭을 하지 않고 AI가 정리한 결과만 살펴본 후 검색을 종료했다고 한다.
제로클릭은 검색의 종말을 넘어 ‘선택’, 나아가 ‘소비의 과정’ 자체가 영향받는 패러다임 변화다. AI의 선제적 제안은 사람이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고르는 수고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선택’을 생략하게 만든다. 나아가 ‘인지-탐색-비교-선택-구매’로 구성된 소비자의 구매 여정에서 ‘탐색-비교-선택’의 과정이 극도로 압축되고 ‘인지-구매’로 직행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전 세계 기업은 각자의 포지션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거나 대응하고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로 생성형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제로클릭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퍼플렉시티는 에이전트형 브라우저 외에 퍼플렉시티 본 서비스에 ‘바이 위드 프로(Buy with Pro)’ 기능을 더했다. 미국에 한정해 ‘Pro’ 모델을 구독하는 사람은 퍼플렉시티를 통해 쇼핑할 경우 일부 제휴된 쇼핑몰의 경우 퍼플렉시티 화면을 벗어나지 않고 결제까지 끝낼 수 있다. 챗GPT 역시 ‘인스턴트 체크아웃(Instant Checkout)’이라는 유사한 개념의 서비스를 도입했다. 주문접수와 배송은 해당 쇼핑몰에서 진행하고 AI가 중간과정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플랫폼을 통해 브랜드를 알리고 소비자 접점을 만들어야 하는 기업들은 빠르게 제로클릭 흐름에 올라타고자 한다. 월마트는 최근 챗GPT의 인스턴트체크아웃 서비스에 제휴를 맺기로 했다. 챗GPT에게 저녁 메뉴를 추천받은 후 떨어진 식자재가 있다면 챗GPT가 월마트를 통해 주문해준다. 여행 예약 사이트인 익스피디아 역시 손을 잡았다. 챗GPT와 대화를 통해 여행계획을 짜고 나아가 그에 맞는 항공편과 숙박을 AI가 대신 익스피디아를 통해 예약해준다. 월마트에 따르면 타사이트에서 자사몰로 들어오는 트래픽 중 챗GPT를 통해 들어오는 비중이 벌써 20%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는 미국의 사례지만 국내에서도 AI의 영향력이 빠르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AI에게 트래픽을 빼앗기면 안 되는 기존의 쇼핑 플랫폼 기업은 자체적인 AI 서비스 개발로 쇼핑경험을 고도화하고 있다. 아마존의 AI에이전트인 ‘루퍼스(Rufus)’가 대표적이다. 아마존에서 쇼핑할 때 페이지 하단에 대화창이 떠서 소비자들이 아마존의 수많은 상품 속에서 헤매지 않고 쉽게 상품을 고를 수 있도록 대화형 쇼핑을 지원한다.
국내 기업도 마찬가지다. SSG닷컴은 모바일 앱에서 ‘AI PICK’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매 및 검색 이력 등을 학습한 AI가 개개인의 취향에 맞게 구매 확률이 높은 상품을 추천해준다. 배달의민족 역시 음식 메뉴 이름을 정확히 입력하지 않아도 ‘울적할 때’와 같이 현재 상황을 입력하면 사람들이 울적할 때 많이 찾는 음식을 추천해준다.
제로클릭 트렌드는 광고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들의 정보탐색 과정에 노출돼 클릭을 유도하는 링크 형태의 검색 광고나 배너 등 디스플레이형 광고는 효과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이제 우선순위는 소비자를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공략하는 일이다. 이제까지는 ‘소비자들이 어떤 키워드로 검색할까’를 고려해 광고를 설정하는 ‘검색엔진 최적화(SEO, Search Engine Optimization)’가 중요했던 반면 ‘AI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 상품(브랜드)를 이해할까’를 고민하는 ‘생성형엔진 최적화(GEO·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가 중요해진다.
물론 모든 소비가 AI를 통한 검색이나 제안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생필품이 아닌 사치재에 한해서는 여러 정보를 직접 찾아보는 쇼핑 과정 자체가 재미를 준다. 따라서 광고 같지 않은 콘텐츠형 광고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어떻게 소비자의 맥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고 브랜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지, 나아가 구매로 이어질지 흐름을 탄탄하게 설계하는 것이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소비자 개인으로서는 우려해야 할 지점도 많다. 모든 정보가 AI에게 넘어간다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간의 주체성을 빼앗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유튜브에서만 하더라도 알고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각자만의 세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로클릭 시대에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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