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부심

입력 2025. 12. 09   15:02
업데이트 2025. 12. 0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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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예성 상병 육군7보병사단 상승불사조여단
방예성 상병 육군7보병사단 상승불사조여단



우리 할아버지 세대는 6·25전쟁을 통해 큰 아픔을 겪었다. 수많은 청년과 학생이 젊음을 바쳐 조국을 수호했다. 나의 조상님 가운데서도 나라을 위해 목숨을 거신 두 분이 계신다. 

그중 백조부께서는 학도병으로 참전해 9사단에 배속됐고, 1951년 1월 8일 전사했다는 정보만 알고 있다. 백조부의 이름 석 자만 현충원 위패봉안관에 새겨져 있다. 가족들은 백조부가 우리 품으로 돌아오길 빌며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의 전화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외조부께서도 6·25 참전용사로, 2011년 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됐다. 외조부는 전란 중 목숨은 부지하셨지만, 총탄으로 다리에 전상을 입어 평생 고생하다가 돌아가셨기에 남은 가족의 마음에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돼 입대를 고민하는 시간이 왔다. 그러나 국가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은 그런 고민을 한순간에 없애 줬다. 오히려 남들과 다른 의미 있는 군 생활을 하고 싶었다. 마침 국유단의 유해발굴기록병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 개인적인 부족함으로 탈락해 아쉬운 마음에 포기하지 못하다가 결국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입대했다.

입대 후 훈련소에서 박격포 특기를 부여받고 육군7보병사단에 자대 배치를 받았다. 현재는 대대 작전병으로 지원해 11개월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희망했던 유해발굴병으로 군 생활을 하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군 생활을 하자는 목표는 달라지지 않았기에 항상 책임감과 초심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나를 믿어 주는 간부님이 좋은 기회를 주셔서 지난 10월 18일 사단에서 진행한 ‘제75주년 평양 최선두 입성행사’에 참전용사 후손 대표로 참여했다. 재연행사 중 김일성종합대학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장면을 멋지게 연출하게 됐다.

입대 전에는 군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자 했다. 그것이 책임이며,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들께도 부끄럼 없는 모습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6·25전쟁 격전지였던 강원 화천군에서 군 생활을 하다 보니 굳이 애쓰지 않고 현재 주어진 임무, 사소한 일도 자부심·사명감을 갖고 이행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더운 여름 유격훈련을 할 때도, 새하얀 눈을 맞으며 혹한기 훈련을 할 때도, 두 번의 과학화전투훈련단(KCTC) 훈련을 받을 때도 특별하고 자랑스러운 누군가의 손자였다는 자부심으로 늘 성실히 임할 수 있었다.

군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 속에서 마주친 인연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기억된다. 성실했던 사람, 남들에게 인정받는 사람. 그러나 나는 단 한 가지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자랑스러운 참전용사의 후손이란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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