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위해 울지말라던 그녀가 다시 묻는다...무엇 향해 가고있는지

입력 2025. 12. 09   16:21
업데이트 2025. 12. 0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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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스테이지 - 뮤지컬  에비타

날 위해 울지말라던 그녀가 다시 묻는다...무엇 향해 가고있는지
여인 ‘에바’의 욕망 가득한 일생 그린 뮤지컬…국내 삼연째
세기의 명곡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2막 안무 인상적

뮤지컬 ‘에비타’ 한 장면.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에비타’ 한 장면. 사진=블루스테이지



“야망이 리듬을 얻는 순간 역사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뮤지컬 ‘에비타’가 14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이번이 삼연, 즉 세 번째 시즌이다. 2006년, 2011년에 공연됐는데 모두 연말에 개최돼 이듬해 1~2월 폐막했다. 어쩐지 베토벤 교향곡 9번, 호두까기인형 같은 느낌으로 왜 ‘에비타’가 한국에선 연말 뮤지컬이 됐는지 궁금하다.

초연은 2006년 11월 개막. 장소는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에비타’ 역에 김선영, 배해선이었다. 재연은 2011년 12월. 역시 LG아트센터로 에비타는 정선아, 리사였다. 당시 정선아의 에비타를 봤다. 이번 삼연은 11월에 막을 올렸다. 강남구 신사동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 중이다. 이번 시즌 에비타는 김소현, 김소향, 유리아로 3명이다.

제작사 블루스테이지가 캐스팅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후문이다. 에비타뿐만 아니라 ‘체’ ‘후안 페론’ 역도 모두 3명씩 캐스팅했다. 초연은 1명, 재연에서는 2명이었다.

심지어 캐릭터 이름도 없는 ‘후안 페론의 애인’ 역을 4명이나 캐스팅했다. 이 역할은 나름 솔로 넘버 한 곡이 배정돼 있는데(후안 페론에게 차인 뒤 부르는 쓸쓸한 노래다), 배우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4명을 캐스팅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들린다. 이와 관련, 흥미로운 사실이 더 있다. 이번 시즌 에비타를 맡은 김소향이 2006년 초연 때는 후안 페론의 애인 역이었다는 사실이다.

뮤지컬 ‘에비타’는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 ‘에바’의 욕망이 굽이치며 흘러가는 인생 전개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에비타를 무작정 찬양한 작품이라고 할 순 없다. 오히려 조롱과 야유의 시선이 공존하는데, 대표적인 캐릭터가 ‘체’다.

아르헨티나 시골에서 태어난 에바는 더 높은 삶을 향한 야망을 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난다. 탱고가수 마갈디에 이어 영화계, 정치 거물들을 자신의 매력으로 사로잡으며 미래를 조각해 간다. 1944년 구호 모금행사에서 후안 페론을 만나 그의 인생에 동행하게 되고, 감옥에 갇힌 그를 석방하기 위한 운동을 주도해 결국 대통령 자리까지 올려놓는다.

 

 

뮤지컬 ‘에비타’ 한 장면.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에비타’ 한 장면.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에비타’ 한 장면.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에비타’ 한 장면.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에비타’ 에바 페론 역 배우 김소현.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에비타’ 에바 페론 역 배우 김소현. 사진=블루스테이지



이후 퍼스트레이디가 된 에바는 유럽 순방에 나서지만, 영국의 푸대접에 이어 내부 귀족사회와 충돌한다. 서민 대중의 절대적 지지와 상류층의 반감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던 중 결국 자신의 몸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그녀의 뜨거운 인생은 짧은 불꽃처럼 사그라든다.

이번 시즌 ‘에비타’는 14년 전 재연 무대와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에비타’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 팀 라이스 황금 콤비의 작품치고는 약간 느슨한 느낌이 없지 않은데 제작사 블루스테이지는 빠르고 힘 있게 작품을 다듬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앙상블의 박력 넘치는 군무다. 뮤지컬에서 넘버가 아닌 안무가 중독성을 지니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2막 ‘돈이 굴러가네(And the Money Kept Rolling in)’의 안무는 따라 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넘버들은 웨버·라이스 콤비의 음악적 성취가 최고조에 이른 시기를 대표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폭발력, ‘잘 자요, 고마워요(Goodnight and thank you)’의 재치, ‘또 다른 여행, 또 다른 길(Another suitcase in another hall)’의 잔잔한 슬픔, ‘새로운 세상(A new Argentina)’의 정치적 열광은 잊기 어렵다. 하지만 이 작품의 모든 넘버는 단 하나의 넘버 앞에서 한쪽 무릎을 꺾을 수밖에 없다. 세기의 명곡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 2막 두 번째 넘버이자 에바의 마지막 연설에 재등장한다. 발코니에 선 에비타가 이 넘버를 부를 때 객석은 물론 조명조차 숨을 죽이는 느낌이다. 이번 시즌에선 ‘에바의 마지막 연설’ 장면을 샤막(Gauze Curtain) 위 에비타와 후안 페론의 대형 영상으로 처리했는데, 이 부분은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김소현은 대표적인 ‘퍼스트레이디’ 전문배우다. ‘명성황후’에서는 “내가 조선의 국모다”(사실 이 대사는 드라마 대사로 뮤지컬에선 등장하지 않는다)였고, ‘엘리자벳’에선 “내가 오스트리아다”였으며 ‘에비타’에서는 “내가 아르헨티나다”(이 대사는 실제로 뮤지컬에 나온다)이다. 전문이다 보니 내공이 쌓여 퍼스트레이디로서의 기품은 김소현이 최고다. 그 어떤 배우에게서도 김소현이 갖고 있는 기품과 아우라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기품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의 연기에서 볼 수 있다.

‘체’는 김성식으로 봤는데 놀라움의 연속. 틀림없이 3명의 체 가운데 가장 나이 어린 체일 것이다. 몸이 가벼워 무대 위를 시원시원하게 날아다녔는데, 커튼콜에서는 근사한 텀블링까지 선보였다. 체와 에바가 왈츠를 추는 장면은 꽤 중의적인데, 두 배우가 멋지게 소화했다.

이 글을 ‘한 줄의 문장’으로 시작했으니 역시 한 줄의 문장으로 맺고 싶다. “뮤지컬 ‘에비타’는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 지금의 질문이다.” 에비타는 한 인물의 인생을 재현한 공연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만드는 무대였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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