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함께… 오래된 품격이 돌아왔다

입력 2025. 12. 08   16:29
업데이트 2025. 12. 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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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 - 헤리티지 아우터

해리스 트위드의 단단한 직조 
더플코트의 군용설계
체스터필드 코트의 통제된 질서…

1920~1960년대 원단·실루엣 귀환
과잉 디자인 넘어 기능성·견고함 강조
불확실한 시대 ‘구조의 복구’로 응답

더블 브레스트 라펠이 달린 싱글 브레스트 체스터필드 셔츠를 입은 앤서니 이든 전 영국 총리(왼쪽 사진)와 버버리의 더플코트. 사진=필자, 버버리 제공
더블 브레스트 라펠이 달린 싱글 브레스트 체스터필드 셔츠를 입은 앤서니 이든 전 영국 총리(왼쪽 사진)와 버버리의 더플코트. 사진=필자, 버버리 제공

 

 

가을의 단풍이 지고 눈과 함께 겨울이 찾아오면서 어느덧 거리엔 면 개버딘 트렌치코트 대신 묵직한 울 코트가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가볍고 기능적인 아우터들이 주류였지만 올겨울 초입부터는 그 흐름이 바뀌었다. 이제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이어온 전통 원단과 실루엣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영국 ‘해리스 트위드’는 깊은 결을 드러냈고, 더플코트는 토글과 후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우리 곁에 돌아왔다. 

이렇게 전통 디자인의 맥을 잇는 겉옷을 ‘헤리티지 아우터(heritage outer)’라고 부른다. 가디언, 마리끌레르 등 매체를 통해 알 수 있듯, 업계는 품질과 미관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다시 오래된 스타일의 아우터를 고르는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또 높은 확률로 올겨울부터 내년 봄까지 헤리티지 아우터가 주류를 이루리라 전망하고 있다.

헤리티지 아우터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트위드’다. 트위드는 바람이 많고 비가 잦은 영국 북서쪽 외딴 섬들에서 시작됐다. 1840년대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제도 주민들은 집마다 놓인 손직기를 돌려 울직물을 짰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짠 두꺼운 직물은 고르게 엮이지 않았으며, 표면이 거칠고 단단했다. 이런 거칠고 두터운 직물은 섬사람들이 살아가는 기후에 적합했으며, 외지 상류층엔 해상 스포츠웨어이자 낯선 지역의 독특한 문화로 비쳤다.

1909년 현지 직조인과 귀족지주들이 모여 ‘해리스트위드협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법 아래 ‘해리스 트위드’란 이름을 엄격하게 정의했다. 규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원사는 반드시 ‘현지에서 깎은 양털’이어야 했고, 염색·방직은 반드시 ‘해당 지역 주민’의 손으로만 해야만 했다. 기계식 방직이나 외부 인력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처럼 철저히 통제된 품질은 곧 ‘귀족 스포츠웨어’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1910~1930년대 영국 상류층은 사냥·승마·골프를 할 때 반드시 트위드를 입었다. 컬러는 대개 진녹색·회갈색·황토색이었고, 패턴은 헤링본·글렌체크·윈도페인이 주를 이뤘다. 기능성과 격식을 동시에 만족시킨 이 원단은 이후 도시 중산층에도 전파되며 ‘일상의 고급’이란 이미지를 굳혔다.

2025년 겨울 이 소재가 다시 돌아왔다. 버버리, 구찌, 블랙베어 등 여러 브랜드가 ‘해리스 트위드’ 인증 원단을 중심으로 코트를 출시하고 있다. 이들은 색보다는 질감, 장식보단 재료를 강조하며, ‘견고함·복원력·신뢰’란 키워드를 내세웠다. 빠르게 닳지 않고, 오래도록 형태를 유지하며, 입는 사람의 삶을 오래 감싼다는 믿음. 바로 그 감정이 지금 트위드를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더플코트는 본래 거칠고 투박한 외투였다. 19세기 벨기에 안트베르펜 인근 더프(Duffe) 지방에서 짠 울 원단이 그 출발점이다. 당시 직조는 느렸고, 실은 두꺼웠다. 그만큼 옷감이 묵직한 대신 바람을 잘 막았다. 영국 해군은 1890년대 장병용 코트로 더플을 도입했고, 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병사 전용 방한복으로 대량 배포했다. 짧은 기장, 넉넉한 품, 목을 감싸는 후드, 장갑을 낀 채 여미기 쉬운 토글 단추까지 모두 실전에 맞춰 설계된 구조였다.

전쟁이 끝나면서 수천 벌의 군용 더플코트가 민간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학생, 노동자들이 이를 헐값에 사 입었다. 이듬해부터 시장에서도 유사 제품이 대량 판매됐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저렴하고 튼튼한 외투’로 인식됐고, 이내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실용성과 내구성, 군용 특유의 무장된 인상이 섞이면서 더플코트는 도시 속 평상복으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 일본에서는 유학생과 전후 세대가 이를 적극적으로 수입했다. 이때 일본에서 더플코트는 당시 유럽 대학생 복식을 상징했으며, 젊고 지적인 이미지와 결합해 ‘문화적 의식 있는 복장’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영향은 1970년대 한국 대학가로도 이어졌다. 주로 유학생 귀국길에 따라 들어오거나 사진·영화 속 스타일로 전파됐다. 다만 당시엔 희소했고, 착용도 제한적이었다.

올겨울 많은 브랜드가 이 형태를 다시 꺼냈다. 토글은 뿔 모양 그대로 남았고, 후드는 깊게 파였으며, 울 원단은 이전보다 더 무거워졌다. 화려함도 없고 장식도 없다. 그 대신 안정감과 무게감으로 돌아왔다. 불확실한 시대, 옛날식 구조와 확실한 재료는 믿을 수 있는 복장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체스터필드 코트’는 19세기 영국의 귀족이자 정치가인 조지 스탠호프 체스터필드 백작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길고 검은 망토 대신 입는 현대적 외투로 등장했으며, 카라엔 벨벳을 덧대고 허리는 적당히 들어갔으며 앞여밈은 단추로 마감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정장 코트’는 여기서 비롯됐다.

이후 산업혁명이 이끈 경제 개편으로 도시 중산층이 부상하자 체스터필드 코트는 단순한 보온용 외투가 아니라 ‘품위 있는 사람의 증표’가 됐다. 단정한 실루엣, 검소한 색감, 목까지 올라오는 여밈 구조는 사적인 공간과 구분되는 공적 세계에서 신뢰를 쌓는 데 필요한 외형이었다. 코트를 입은 사람은 어떤 장소에 있어도 도망치지 않고 책임지는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여겨졌다.

이런 인상은 직업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20세기 초, 은행원·공무원·변호사·교사 같은 전문직 남성은 모두 이 코트를 입었다. 겉으로 보이는 형태는 직종과 무관했으며, 이는 오히려 이 직업들이 공유하는 규율·격식·제도 중심의 윤리를 시각화하는 도구였다. 심지어 군인과 식민지 행정관들도 유사한 실루엣을 채택했다. 더블브레스트, 어깨 견장, 벨트 등은 모두 ‘통제된 질서’를 암시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일상 복장이 유연해지면서 체스터필드 코트는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스마트 캐주얼’이 기본이 되고, 슬랙스 대신 데님을 입는 흐름이 확산되자 코트는 ‘너무 과한 복장’으로 밀려났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며 이 흐름은 더 강해졌다. 격식의 기능은 축소됐고, 편안함과 유연함이 덕목이 됐다.

하지만 체스터필드 코트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각종 재난과 이슈로 가득한 사회, 미래가 불확실하고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격식과 단정함에 대한 갈망이 되살아난다. 체스터필드 코트는 다시 ‘책임 있는 외형’으로 부각된다. 과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늘 제 모양을 유지한다. 이런 안정감이 다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이번 겨울 헤리티지 아우터의 귀환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이는 구조의 복구다. 실루엣과 원단, 단추 하나까지도 기능성과 질서에 따라 배치됐던 외피의 논리를 다시 호출하는 움직임이다. 경제 불확실성과 기후 변화, 그리고 반복되는 과잉 디자인에 피로를 느낀 소비자들이 결국 기본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 흐름은 쉽게 바뀌기 어렵다. 중심은 견고함과 단정함 사이에 남는다. 이제 계절은 겨울로 깊어간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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