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병영] 물건리

입력 2025. 12. 04   15:58
업데이트 2025. 12. 04   16:03
0 댓글
양문규 시인
양문규 시인

 


바닷물에 절을 대로 절은 방조림을 걸었다
느티나무 푸조나무 이팝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모감주나무 광대싸리 보리수 두릅나무 인동초 댕댕이덩굴 배풍등과 온갖 꽃과 풀의 길 
서로서로 손을 잡고 어우렁더우렁 어깨를 걸고 
모진 바람과 해일을 막아 
물고기 떼까지 불러들인다는데 
이 세상 
나무는 나무대로 
덩굴은 덩굴대로 
꽃은 꽃대로 
풀은 풀대로 
그대로 물건이 아닐까마는 
어떤 나무는 
껍질이 통째로 벗겨져도 
끝끝내 썩지 않는 심장이 뛰고 있다 
세상 가장 큰 숲, 우리 엄니처럼 


<시 감상> 

바닷가 숲길을 걸어간다. “느티나무 푸조나무…”와 “온갖 꽃과 풀”이 흐드러진 숲길. 그(그녀)의 밝은 눈에 비치는 것은 숲을 구성하는 나무, 덩굴, 꽃, 풀과 같은 온갖 생명의 어울림이다. 그것들은 고유한 개체 “그대로 물건이 아닐까마는” 각기 따로가 아니라 “서로서로 손을 잡고 어우렁더우렁 어깨를 걸고 /모진 바람과 해일을 막아 /물고기 떼까지 불러들”이는 동화상생(同和相生)의 세계를 지향한다.

이처럼 시인은 남해 물건리 바닷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물건방조어부림(勿巾防潮魚付林)’ 숲의 절경과 의미를 보여 준다. 그 방식은 언어유희를 가미한 생동감 넘치는 언술이다. 숲의 개체를 지명과 결부해 ‘물건’이라 부르고, 그것들이 “손을 잡고 어우렁더우렁 어깨를 걸고” 해일을 막아 내고 물고기 떼를 불러들이는 흥겨운 이미지다.

그 흥겹고 재밌는 시문의 이랑과 고랑에서 섬광처럼 반짝이는 깨달음을 발견할 때 우리의 가슴은 낯설고 새로운 감동으로 일렁인다. “어떤 나무는 /껍질이 통째로 벗겨져도 /끝끝내 썩지 않는 심장이 뛰고 있”는 것처럼. 이 항구성을 표상(表象)하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물건리 숲은 이제 더 이상 바닷가 작은 숲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생명의 모태로 충만한 “세상 가장 큰 숲”으로 승화된 새로운 동화상생의 세계가 된다. 이처럼 매일매일 걸어가는 우리들의 일상이란 숲길에서도 늘 똑같은 지루한 삶의 방식만이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안에 무궁무진한 새로움을 숨긴 세계가 우리의 개안(開眼)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