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예술
Artist Studio 27. 샤토 라 코스테, 자연이라는 캔버스 위 건축과 현대미술의 조응
더 느리게 다 누리게… 사유와 여백 속으로
보랏빛 라벤더 춤추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와이너리이자 건축·예술·자연 어우러진 곳
안도 다다오 등 거장의 건축물 자연과 동화
루이스 부르주아·이우환 작품 보물찾기 하듯
포도밭, 숲길따라 현대미술 대표작과 조우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는 뜨거운 태양과 보랏빛 라벤더, 올리브나무가 만들어내는 목가적인 풍경으로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지역이다. 이 가운데 엑상프로방스 북쪽에 자리한‘샤토 라 코스테(Ch teau La Coste)’는 600헥타르(㏊) 규모의 포도밭과 숲, 언덕을 품고 있는 최고급 와이너리이자 건축과 예술,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복합예술 공간이다. 이곳은 자연의 유기적인 질서와 건축, 현대미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샤토 라 코스테’는 아일랜드 출신의 부동산 재벌이자 호텔 사업가인 패트릭 스터드루크에 의해 설립됐다. 스터드루크는 열렬한 현대미술 및 건축 애호가이자 컬렉터다. 예술 작품을 화이트 큐브에서 해방시켜 빛, 바람, 대지 등 자연적 요소와 융합시키는 것을 추구한 스터드루크는 포도밭 부지를 현대 건축과 조각을 위한 거대한 실험장으로 구상했다.
안도 다다오, 렌조 피아노, 장 누벨 등 세계적인 건축가와 루이스 부르주아, 리처드 세라, 소피 칼, 장미셸 오토니엘 등 현대미술의 거장들을 초청해 포도밭 곳곳을 직접 둘러보고 공간과 조응하는 작품·건축물을 의뢰했다. 그는 작품과 환경이 분리되지 않는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예술 공간을 조성해 관람객이 자연 속을 거닐며 우연히 작품을 발견하고 체험하는 장을 제공하고자 했다.
샤토 라 코스테의 ‘아트앤드아키텍처 워크(Art & Architecture Walk)’는 지도를 들고 전문 도슨트와 함께 올리브숲과 포도밭 언덕을 넘나들며 수십 점의 현대미술과 건축을 둘러보는 아트 투어다. 천천히 걸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포도밭에 내리쬐는 태양과 숲의 바람을 함께 즐기려면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코스다. 간혹 길을 잃기도 하고, 풍경과 작품의 조화에 넋을 잃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도장 깨기하듯 작품과 건축물을 모두 방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조화와 리듬, 풍광과 작품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천천히 걷고, 감각을 확장해 이 공간의 본질인 자연과의 조화를 발견하는 것이 핵심이다.
창립자 이상에 따라 ‘샤토 라 코스테’의 건축물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더불어 존재한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안도 다다오, 장 누벨, 렌조 피아노, 프랑크 게리 등의 건축가들은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과 해석을 바탕으로 한 건축물을 선보였다. 가장 상징적인 존재는 안도 다다오다. 그는 전체 마스트플랜에 관여하며 총 네 개의 건축물과 메인 공간인 아트센터를 설계했다. 다다오 건축의 시그니처인 노출 콘크리트와 기하학적 직선 구조는 주변의 유기적 풍경과 조화를 이뤄 차갑고 고요하다. 콘크리트 벽면에 프로방스의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며 만들어내는 빛의 그러데이션은 건물 내외부의 작품과 절묘히 조응한다. 특히 수평적 선을 강조한 V자형의 아트센터는 고요한 수면 위로 돌출돼 있는데, 물에 반사된 콘크리트의 회색 음영과 하늘의 푸른 빛이 겹쳐 다다오 특유의 미니멀리즘과 빛의 미학이 돋보이는 사유의 공간을 창출한다. 관람자는 이 건축을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건축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빛의 변화와 공간의 울림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또 다른 주목할 건축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파빌리온이다. 지형 경사를 따라 매립된 건물 일부와 더불어 유려한 천장 구조와 외부로 열린 시선은 건축적 공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상기시킨다.
모험적이고 해체주의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프랭크 게리는 콘서트홀을 건축했다. 이 건축물은 서펀타인 갤러리의 서머 파빌리온으로 제작돼 전시가 끝난 후 해체됐다가 샤토 라 코스테 부지에 그대로 재현 및 영구 설치된 것이다. 미술품뿐만 아니라 건축물도 소장하고 전용(轉用)할 수 있는 현대 컬렉션의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곳의 또 다른 백미는 포도밭, 숲길, 호수 등 다양한 자연환경 속에 설치된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다. 이곳의 조각과 설치 작품은 예상 가능한 정해진 공간이나 관람 동선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광활한 포도밭 사이, 숲의 오솔길, 언덕의 비탈길, 고요한 호숫가 등 다양한 지형에 작품이 스며들어 있다. 40여 명의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 작품이 자연 속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도록 설치돼 있다. 산책을 즐기면서 루이스 부르주아, 리처드 세라, 트레이시 에민, 이우환, 쟝미셀 오토니엘, 프루네 누리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트센터 앞 호수 위에 설치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조각 ‘마망(Maman)’은 거대한 사이즈와 독특한 형상으로 아트앤드아키텍처공원 입구 수호신과 같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밖에 금속, 철강, 석재, 유리 등을 이용한 설치 작품이 곳곳에 놓여 있다. 작품들은 자연광을 받아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다른 색·질감을 드러내며, 계절에 따라 표면 질감도 미묘하게 달라진다.
리처드 세라의 대형 철조 설치 작품, 한국 작가 이우환의 장소와 조응하는 작품,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은 오토니엘의 영롱한 십자가, 구릉진 잔디밭에 설치된 프루네 누리의 거대한 신체에서 우리는 샤토 라 코스테의 아트앤드아키텍처 공원이 추구하는 자연과 조응하는 예술의 참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장소와 공간의 성격을 반영해 제작된 장소 특정적 작업이다. 작품이 놓인 지형, 식생, 빛, 공기 흐름 모두가 작품을 해석하는 요소가 된다. 동시에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포도밭을 걷는 행위도 감상의 일부다. 걷는 속도 또한 감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여기서는 천천히 감상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그 느린 행보가 바로 샤토 라 코스테의 가장 중요한 연출로 느림의 철학이 사유와 여백의 힘을 발견하게 한다.
샤토 라 코스테는 프로방스의 역사적인 와이너리라는 캔버스를 선택해 예술을 자연과 더불어 체험하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시킨 매력적인 프로젝트다. 와인은 이 모든 경험에 풍미를 더하는 일종의 쉼표 같은 역할을 한다. 아트 투어를 끝내고 나면 석양을 마주하며 샤토 라 코스테의 고급 와인 한 잔과 함께 예술적 여운을 즐기기를 권한다. 당신의 완벽한 하루를 자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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