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이용하는 순간 역전이 왔다

입력 2025. 12. 03   16:51
업데이트 2025. 12. 03   16:59
0 댓글

‘그라운드에서 넘어졌으니 그라운드에서 일어선다’ 
프런트 직원·매니저 치열한 시간 속에서 집요하게 노력
야구 끝까지 알 수 없듯이 인생도 끝 알 수 없기에
역전에 또 역전 야구드라마 쓴다



“실패를 이용해라. 실패에서 배우고 더 나은 길로 가라.”

2023년 LG 트윈스 29년 만의 통합우승에 이어 올해 또 한 번의 승리를 안겨 주며 팬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한 염경엽 감독의 야구인생을 담은 첫 책 『결국 너의 시간은 온다』가 출간됐다. 인생의 정점에 선 감독의 책이라니 화려한 성공을 얘기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그의 책에는 ‘실패’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염 감독은 인생에서 가장 낮았던 순간부터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스스로 증명해 온 치열한 시간과 그 속에서 발견한 삶의 철학을 책에 솔직하게 담아냈다.

출발은 ‘실패한 1할 타자’. 그는 선수 시절의 자신을 ‘엉터리 선수’라고 표현했다. 프로에 지명돼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는 작은 성공에 취해 노력과 목표 없이 재능을 흘려보냈다. 결국 대수비 요원으로 밀려났고, 통산 타율 1할대라는 기록으로 10년 만에 등 떠밀려 유니폼을 벗었다.

좌절이 클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야구는 아니라는 생각에 이민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그라운드에서 넘어진 이상 그라운드에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며 마음을 다잡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은퇴 후에는 유니폼이 아닌 정장을 입고 현대 유니콘스 프런트 직원으로 구단 사무실에 출근했다. 당시 프로선수 출신이 운영팀원으로 들어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자괴감이 들 법도 한데, 두 번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실패에서 배워 나갔다. 그는 새로운 시작 앞에서 “작은 일이라도 염경엽이 하면 다르다”는 소리를 듣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심을 쏟았다.

그렇게 두 번째 야구인생이 시작됐다. 매니저, 스카우트팀, 운영팀장을 거치며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고 코치, 단장, 감독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초보감독으로 부임해 만년 하위 팀이던 넥센 히어로즈를 4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시켰고, SK 와이번스 단장으로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현재는 LG 트윈스 감독으로 2번의 통합우승을 이끌어 내며 집요했던 노력의 시간을 증명하고 있다.

 

 

결국 너의 시간은 온다 / 염경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결국 너의 시간은 온다 / 염경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지도자로서 그는 ‘염걀량’ ‘염버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치밀한 데이터와 전략으로 승부하는 지략가이자 끝까지 선수를 믿고 키워 내는 리더라는 뜻이다. 염 감독이 말하는 리더는 위에서 명령만 내리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옆으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실력뿐만 아니라 상대방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능력 역시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역량이라는 것이다.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힘에는 ‘사람은 믿어 주는 만큼 자라고, 아껴 주는 만큼 여물고, 인정하는 만큼 성장한다’는 그의 신념이 깔려 있었다. 그는 시즌 중간 주전을 잘 바꾸지 않으며 선수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보장해 준다.

“경험상 선수들은 불안한 경쟁보다 자신의 역할에 집중할 때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내부 경쟁을 유도하기보다 선수 개인마다 정확한 역할을 부여하고 각자 맡은 역할에서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원칙은 안정적인 팀 분위기를 만들었고, 조직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모으는 힘이 됐다.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자)이라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또 다른 우승 동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다. 이를 가장 잘 보여 줬던 전략은 바로 주자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달리는 야구’다. 선수도, 관중도 패배에 가까워졌다고 느낄 법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뛰면서 다양한 득점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2023년 LG 트윈스는 구단 역사상 2번째로 많은 승리를 거뒀다.

그가 꿈꾸는 것이 단기간의 우승은 아니다. 자신이 감독 자리에서 떠나고 선수 누군가가 빠지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바탕으로 자연스레 돌아가는 팀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리더는 조직의 10년 후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염 감독은 궁극적으로 그저 강한 팀이 아니라 ‘오래’ 강한 팀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코치가 미래의 감독이 되고, 고참 자리를 후배들이 이어받아 더 큰 성과를 내는 팀이 그가 꿈꾸는 진짜 왕조의 모습이다.

이 책은 야구기술서도, 성공담만 모은 자기계발서도 아니다. 실패한 선수의 고백이자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자기성찰인 동시에 지금 흔들리고 있는 청춘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막 입대한 이병부터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까지 누구나 자신에게 해 주는 조언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는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 앞에 선 청년들에게 막연한 ‘꿈’을 갖기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야구선수 출신으로 구단 행정과 운영 업무를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타고난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다. 목표를 위해 단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꾸준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원한다면 할 수 있다.”

야구뿐만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가 인생의 승리를 꿈꾸는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포기하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다. 모든 걸 쏟은 사람에겐 반드시 그의 시간이 온다.”

김세은 인턴기자/사진=연합뉴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