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너머에서 지키는 평화, 가정 너머에서 지키는 사랑

입력 2025. 12. 01   15:29
업데이트 2025. 12. 01   15:40
0 댓글
김지혜 육군대위 레바논평화유지단
김지혜 육군대위 레바논평화유지단



“엄마, 지금 어디야? 아직 레바논이야?” 

영상통화 너머로 들려오는 다섯 살 딸아이의 물음에 잠시 숨을 고른다.

2025년 5월, 동명부대 공보장교로 선발돼 레바논에 파병됐다.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일상이지만 입고 있는 군복은 그 낯섦 속에서 단단한 사명을 일깨워 준다. 지금 곁에는 익숙한 가족도 없고, 멀리 한국에선 남편과 딸이 내가 없는 일상을 살아간다.

이 선택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뒤에서 조용히 응원해 주고, 또 한 사람 몫의 육아와 살림을 책임져 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린 딸은 아직 엄마의 부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영상통화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나를 안심시켜 주는 가장 든든한 존재다.

레바논 남부는 한때 치열한 분쟁의 현장이었고, 지금도 다양한 상황이 발생한다. 동명부대는 유엔 깃발 아래 다국적군이 모여 레바논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공보장교로서 임무는 부대 활동을 기록하고 알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를 대외적으로 설명하고, 그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장병들의 작전과 민·군 활동을 동행하며 기록하고, 현지 언론 및 유엔 관계자들과 협력해 부대 활동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일이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지만, 이 임무의 무게를 자랑스럽게 감당하고 있다.

이곳의 하늘은 겉보기엔 평온해 보이지만, 여전히 긴장감이 흐른다. 정세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상황은 예기치 않게 바뀔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자문한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그리고 되새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그 단순하지만 절실한 이유 하나가 오늘도 이곳에 서 있게 한다.

늦은 밤 언론 모니터링을 마치고 딸아이의 사진을 꺼내 보는 순간이 있다. 밝게 웃는 아이의 얼굴, 그 곁을 지키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면 뭉클해진다. 그리움이 늘 함께하지만, 이 사명의 시간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곳에서 수행하는 임무가 딸이 살아갈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보람이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남편은 “당신이 가진 따뜻한 마음, 강한 책임감, 군인으로서 자부심은 그곳에서도 분명히 빛을 발할 거야”라며 조용히 중심을 잡아 줬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각자 자리에서 평화를 지키고 있다. 국경 너머에서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 남편은 가정에서 아이의 안정과 사랑을 위해. 이 두 평화는 떨어진 게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든든한 축이다.

군인으로서의 사명, 가족을 향한 책임, 그 사이에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그 중심엔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이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