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 6·25 전사자 유해 25구 수습

입력 2025. 12. 01   16:56
업데이트 2025. 12. 0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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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간 작전…유품도 1962점 발굴
현장감식 결과 다수 국군으로 추정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조국 품으로”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장병들이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 일대에서 유해를 수습하고 있다. 3년 만에 재개된 비무장지대 유해발굴작전에서 우리 군은 유해 25구와 유품 1962점을 발굴했다. 국방부 제공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장병들이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 일대에서 유해를 수습하고 있다. 3년 만에 재개된 비무장지대 유해발굴작전에서 우리 군은 유해 25구와 유품 1962점을 발굴했다. 국방부 제공



우리 군이 3년 만에 재개한 비무장지대(DMZ) 백마고지 유해발굴작전에서 6·25전쟁 중 산화한 호국영웅 25명의 유해와 1962점의 유품을 수습했다.

국방부는 6·25전쟁 당시 중부전선 주요 전투지역이었던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 일대 유해발굴을 지난 10월 15일부터 11월 28일까지 실시했다고 1일 밝혔다.

45일간 펼쳐진 작전에는 하루 평균 100여 명의 장병이 참가했다. 유엔군사령부(유엔군) 회원국 장병들도 동참했다. 군은 발굴된 유해들을 현장감식한 결과 다수를 국군 전사자 유해로 추정하고 있다. 군은 정밀감식과 유전자(DNA) 분석 등을 해 정확한 신원을 확인할 예정이다.

군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의 하나로 백마고지 일대 유해발굴을 다시 시작했다. 국방부는 “6·25전쟁 호국영령들을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돌려보내 드리기 위한 노력이며, DMZ 내 평화 구축이라는 우리 정부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백마고지는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국군 9사단과 중공군이 12차례 공방을 벌인 격전지다. 당시 열흘 동안 포탄 27만5000여 발이 쏟아졌고, 유엔군 항공기 폭격이 745회 이뤄졌다. 우리 측 사상자 3500여 명, 중공군 사상자·실종자 1만여 명이 발생했다. 이처럼 손꼽히는 접전이 벌어졌던 이유는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고지는 해발 400m가 채 안 되지만, 남쪽으로 넓은 철원평야가 펼쳐져 반대편에서 적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정상의 주인이 7번이나 바뀌는 대혈전 끝에 9사단은 고지를 사수해 냈지만, 수많은 포탄 사격으로 고지는 ‘민둥산’이 됐다. 하얀 재가 쌓여 있는 모습이 마치 흰말과 같다고 해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군은 2021년 9~11월 처음으로 백마고지 유해발굴에 돌입했고, 이듬해인 2022년 4~11월에도 발굴을 진행했다. 그 결과 유해 67구(신원확인 4구)와 유품 1만5670점을 발굴했고, 지뢰와 폭발물 910여 발도 식별·제거하는 성과를 거뒀다. DMZ 내 유해발굴은 안보상황이 악화함에 따라 장병 안전 보장을 위해 2022년 11월을 끝으로 중단됐다.

앞서 남북은 2018년 9월 19일 ‘군사 분야 합의서’를 통해 DMZ 내 잠들어 있는 6·25 전사자를 찾기로 했다. 백마고지보다 먼저 2019년 4월부터 2021년 6월까지 DMZ 내 유해발굴이 전개된 화살머리고지에서는 유해 424구(신원확인 10구)와 유품 10만1816점, 지뢰·폭발물 9900여 발을 식별·제거했다.

국방부는 “우리 군은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산화한 6·25전쟁 호국영령들을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해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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