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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보훈부)는 전국에 퍼져 있던 의병세력을 모아 연합군을 조직해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한 ‘13도창의군 결성’을 ‘12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했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13도창의군은 1905년 일제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한 이후 전국에서 확산한 의병항쟁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결성된 연합의병부대다.
당시 대한제국 정부가 외교권을 빼앗기고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되자 해산 군인과 각지의 의병이 결집하며 투쟁이 확대됐다. 강원·경기에서 활동하던 이인영과 허위를 중심으로 전국 의병 지도자들이 연합해 1907년 말 13도창의대진소를 조직했고 이인영이 총대장, 허위가 군사장으로 추대됐다. 이들은 일제 통감부를 공격해 일제와 강제로 맺은 조약을 파기하고 국권을 회복하며, 친일 관료를 처단한다는 목표로 서울진공작전을 계획했다.
1만 명 규모의 의병이 지평과 양주에 집결해 여러 전투에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후속부대의 본진 도착 지연과 탄약 부족 등으로 서울까지 진공이 어려워졌다. 아울러 일본군의 대대적 탄압까지 이어지면서 민긍호·이강년·허위·이은찬·이인영 등 핵심 지도부가 잇달아 전사하거나 체포·순국했다. 13도창의군은 비록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최초의 전국적 연합의병 조직을 구축, 무력투쟁과 외교운동을 병행하는 전략을 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이런 활동은 장기간 지속된 의병운동의 역량을 보여 줬으며, 이후 국내외에서 치열한 무장투쟁 운동을 하는 전환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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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보훈부는 6·25전쟁 당시 강릉 동해안지구 북한군 토벌작전 중 앞장서 적진으로 돌격해 작전 성공에 기여하고 전사한 이준규 경사를 ‘12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52년 후반, 전선은 현재의 군사분계선 일대로 고착돼 큰 변화는 없었으나 유엔군과 국군은 북한·중공군을 상대로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고지전과 전후방지역의 북한군 토벌작전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강원도 산악지대인 석병산·만덕봉·골폭산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인근 마을에서 약탈·선전활동을 지속했다. 이에 강원경찰국 전투사령부는 1952년 12월 7일 강릉군(현 강릉시) 왕산면 고단리에 동해안지구 작전 전방지휘소를 설치하고, 이튿날 제216경찰부대와 인근 경찰병력을 통합해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12월 8일부터 16일까지 9일간 진행된 작전에서 경찰은 다수의 적을 사살·생포하고 총기·탄약·비밀문서 등을 대량 노획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경사는 1952년 12월 15일 새벽, 강릉군 일대에서 남하 중이던 북한군을 추격하는 작전에 투입됐다. 약 30분간 치열한 교전이 이어진 가운데 그는 전우들의 피해를 줄이고 적을 섬멸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적진으로 돌격하던 중 적탄을 맞고 현장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이후 합류한 경찰부대가 나머지 적을 섬멸하며 토벌작전을 완수했다. 노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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