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장

입력 2025. 11. 26   16:59
업데이트 2025. 11. 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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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에도 인간이 승패 좌우하기에… 
사유·성찰·실전 경험 갖춘
군사 전문 직업주의 갖춰라

자타 공인 ‘클라우제비츠 전문가’가 제시하는 안보전략
200년이 지나도 변치않는 ‘전쟁론’ 핵심원리 재해석
장교 군사적 직관·전문성 강조…교육 재설계 등 방법론 제시

 

 

전쟁을 알아야 평화를 이룬다 / 지베르니 펴냄
전쟁을 알아야 평화를 이룬다 / 지베르니 펴냄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발간된 지 200년이 넘은 책입니다. 이제 모든 명제가 유효하지는 않지만 전쟁의 본질과 구조에 관한 핵심 원리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제 책은 이런 클라우제비츠 명제의 본래적 의미와 현재적 가치를 설명하고 이를 오늘의 안보 상황에 맞게 정리한 것입니다. ‘진리의 본질은 자유’라는 관점에서 이 책이 전쟁과 평화에 관한 창의적 사유와 자유로운 담론을 조금이라도 자극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 

류제승(예 육군중장) 한국국가전략연구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클라우제비츠 전문가다. 육군교육사령관, 국방부 정책실장, 주아랍에미리트(UAE) 대사 등 굵직한 자리를 거치며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활약한 류 원장은 평생을 클라우제비츠에 천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펴낸 신간 『전쟁을 알아야 평화를 이룬다』는 인공지능(AI) 혁명으로 격변하는 미래전에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한 결실이다.

류 원장은 책에서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전쟁과 평화는 결국 ‘인간’의 몫이며, 이를 최일선에서 수행해야 하는 군인은 ‘군사 전문 직업주의(Military Professionalism)’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류 원장은 육군사관생도 시절 독일 유학을 하면서 프로이센군의 새로운 기틀을 닦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클라우제비츠의 철학과 저술을 꾸준히 탐구한 것은 군인의 길에 필요한 사유와 리더십을 익히기 위함이었다.

책은 AI와 기계의 진보가 불러올 전쟁 양상 변화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류 원장은 그럼에도 인간이 AI의 운용자로서 지속가능한 권위를 유지하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이미 많은 발전을 이룬 현대·미래전에서도 『전쟁론』의 핵심원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현대·미래 전쟁이 첨단·복합화되면서 원인과 결과가 복층적 성격을 띠지만 전쟁술은 여전히 국가전략·군사전략·작전술·전술 체계로 유지됩니다. 상위 단계 전략이 하위 단계에 미치는 영향은 강화되고 있지만 ‘국민 전쟁의 시대’라는 기본 틀은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류 원장은 우리 군 장교들이 군사 전문 직업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클라우제비츠의 ‘군사적 천재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AI가 ‘비유기적 생명체’로 진화하면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인간이 운용자로서 권위를 유지하려면 이성·감성·사회·운동 지능을 꾸준히 개발하고 존엄성·윤리·창의·공감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군사 전문 직업주의는 이를 위한 기저문화라는 게 류 원장의 지론이다.

“군사 전문 직업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보존, 문민 우위, 정치적 중립, 인권 존중 등 헌법적 가치와 함께 사회적 책임, 전문 역량, 집단 전투력, 명령과 복종의 원리를 시대정신에 맞게 구현해야 합니다. 정치지도부는 국가전략 차원에서 군사문제를 제기하고, 군사지도부·장교단은 비판적 견해를 제시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군사 전문 직업주의를 선도하는 군사적 천재, 즉 엘리트 장교를 통해 우리는 미래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류 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클라우제비츠는 군사적 천재는 혜안과 결단력을 갖춘 인물로 전장의 마찰과 우연 속에서도 필요한 원칙을 직관적으로 적용하는 군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혜안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축적된 개념과 사유를 통해 본질을 신속히 파악하는 안목이죠. 따라서 장교 교육은 지식 전달보다 ‘생각에 대한 생각 능력’ 즉, 초인지적 자아성찰과 과학적 행동 양식을 습득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이를 위해 판단력과 비판적 사고를 길러줄 자율학습·토론, 인격과 적성을 강화하는 실전적 사례 교육도 필요하죠. 장교단은 지식보다 사유·성찰·실전 경험을 통해 군사적 직관과 전문성을 갖출 수 있음을 되새겨야 합니다.”

군사 전문 직업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했다. 류 원장은 “장교 교육체계를 재평가·재설계해 군사학, 전쟁사, 국가안보학, 민군관계학 등을 필수 과목으로 편성하고 워게임과 사례 연구를 통해 실전적 판단·결심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수한 인재를 관리하기 위해 독일·미국의 ‘장군참모과정’을 참고해 우리 현실에 맞게 제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렇게 길러진 장교단이 국가의 책무와 군인의 사명에 충실하며 집단지성과 비판력을 발휘해 군사 대비태세와 미래 기획을 주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군 조직은 국민의 신뢰를 얻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군사 전문 직업주의 문화가 확립될 것입니다.”

우리 군이 적용 중인 ‘임무형 지휘’의 시작점 역시 클라우제비츠와 샤른호르스트가 설계한 프로이센 육군 개혁 철학과 프로그램이다. 류 원장은 ‘임무형 지휘’의 중요성은 미래에 더 부각될 것으로 예상했다.

“AI 시대에도 인간의 판단력과 용기가 승패를 좌우할 것입니다. 임무형 지휘의 핵심은 상급 지휘관이 의도를 제시하고, 하급 지휘관에게 행동의 자유를 부여하는 ‘복종 속의 자유’에 있죠.”

그는 책에서 명령과 복종의 원칙, 그리고 그 한계에 대해 통찰력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휘관은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고 부하는 복종할 의무가 있지만 복종은 절대적이지 않고 합법적일 때만 유효합니다. 명령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명령자에게 있으며, 복종자는 실행 과정에 한정된 책임을 집니다. 그러나 인권 침해, 사적 목적, 범죄를 낳는 명령은 효력을 상실하며 복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판으로 이행이 불가능하거나 상황 변화로 무의미해진 명령 역시 보고 후 불이행할 수 있죠. 단, 명령의 한계 여부는 사안과 법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복종은 맹목적이어서는 안 되며 인권 존중과 합법성의 범위 안에서 공적 임무와 이유에 의해 엄정하게 이행돼야 합니다.”

류 원장은 자신의 책에 정리한 ‘전쟁론’ 주요 명제 18개를 정부·군 정책결정자, 사관생도, 군 간부가 여러 차례 반복해 깊이 음미하길 권했다. 각 명제가 독립된 지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이유다.

“개별 진정한 의미는 명제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할 때 드러납니다. 전체 구조 속에서 명제들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이해해야 전쟁의 본질이 드러나죠. 또 이론이 추상에 머물지 않고 실제 전장과 정책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반복적 독서와 깊은 사유를 통해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을 살아 있는 지침으로 수용하고, 이로써 더 믿음직스러운 군사적 판단과 정책적 결정이 가능해지길 소망합니다.”

글=맹수열/사진=조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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