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를 열며 마주한 전우애

입력 2025. 11. 25   15:38
업데이트 2025. 11. 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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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소령 해군잠수함사령부 신돌석함
정범진 소령 해군잠수함사령부 신돌석함


서태평양 잠수함 탈출·구조훈련
서로 다른 언어·장비 사용하지만
조난 승조원 구조라는 한마음으로
뜨거운 전우애 다져

 


지난 9월 신돌석함 전투체계관으로서 다국적 잠수함 구조훈련인 ‘2025 서태평양 잠수함 탈출 및 구조훈련(PAC-REACH)’에 참가했다.

2000년 첫 개최 이후 참가국들이 번갈아 가며 주관해 온 ‘PAC-REACH’는 조난 잠수함 승조원 구조를 위해 세계 각국 해군과 관계기관이 힘을 모아 상호운용성을 향상하는 훈련이다.

올해는 싱가포르 해군이 주관해 5개국에서 3척의 잠수함과 4척의 구조함이 참여했다. 또 17개국에서 50여 명의 옵서버와 잠수의학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PAC-REACH’는 단순한 연합훈련이 아니라 바다 깊은 곳에서도 생명을 지켜 내겠다는 약속을 확인하는 훈련이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잠수함이 25년 만에 싱가포르에 방문했고, 창이 해군기지에 처음 입항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창이 해군기지에 정박해 잠수함 갑판에서 당당히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나라를 대표한다는 벅찬 자부심을 느꼈다.

훈련 준비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출항 전 수개월간 이어진 점검과 반복훈련, 25년 만의 잠수함 남중국해 단독 항해 등 모든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우리는 준비한 만큼 해냈고, 그 과정에서 승조원들의 팀워크는 더 단단해졌다.

훈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외국군 잠수함 구조정(DSRV)이 우리 해치에 접합해 양측 해치가 열리던 순간이었다.

단단한 철문 하나가 열렸을 뿐인데, 마치 국경이 사라지고 마음이 이어지는 듯한 울림이 있었다. 그때 들려온 DSRV 승조원의 “많이 늦진 않았나? 기다려 줘 고맙다”는 한마디. 그 속에는 끝내 포기하지 않겠다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두운 바닷속에서도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느끼며 가슴 깊이 뜨거운 전우애가 차올랐다.

‘PAC-REACH’는 서로 다른 언어와 장비를 사용하지만, 결국 ‘조난된 승조원을 구조한다’는 한마음으로 전우애를 다지는 훈련이었다. 그 마음이 모였을 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체감했고, 이 경험은 군 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국경을 넘어선 신뢰와 우정, 준비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 이 모든 게 값진 선물이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그 신뢰를 지켜 내며 바닷속에서 대한민국을 굳건히 수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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