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훈련 중입니다

입력 2025. 11. 25   15:38
업데이트 2025. 11. 2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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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율 해군대위 해병대9여단 신부
박재율 해군대위 해병대9여단 신부

 


현재 ‘2025년 해군순항훈련’에 참가 중입니다. 순항훈련은 해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들이 마지막 학기를 바다에서 보내면서 전 세계를 누비고, 수업·실습·견학을 하는 교육과정입니다. 올해 순항훈련은 지난 9월 5일 진해 군항을 출발해 괌·하와이·뉴질랜드·호주·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베트남·필리핀 등 9개국 10개 기항지를 지나 12월 18일 다시 진해로 귀항하는 일정입니다.

350명이 넘는 순항훈련전단은 한산도함에 몸을 싣고 대양을 누비고 있습니다. 이 안에는 다양한 직책과 역할이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견시를 서고, 누군가는 식사를 준비하며, 누군가는 수업과 실습에 참여합니다. 각자 임무는 다르지만 같은 바람과 파도를 마주하며 ‘순항훈련 완주’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같은 배에 탑승했어도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은 제각기 다르고, 바라보는 세상도 다릅니다. 이 때문에 이 작은 공간에서 ‘함께 있음’이란 문제는 관념이 아니라 날마다 마주해야 하는 실질적인 과제입니다.

제가 생활하는 격실도 목사님, 스님, 의무참모님까지 4명이 함께 씁니다. 종교도, 역할도 다른 이들이 같이 생활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의지하며 조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함께 있음’의 실천입니다. 이 내부 조화를 바탕으로 우리는 외부세계라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향해 나아갑니다.

순항훈련은 ‘경험의 확장’입니다. 낯선 바다와 항만, 새로운 문화와 마주하는 순간은 세계의 넓이를 실감하게 합니다. 우리가 지키는 바다가 한반도 주변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국제적 흐름과 맞닿아 있음을, 바다를 지키는 우리의 역할도 결국 세계와 연결돼 있음을 배웁니다.

또한 기항지에서 교민과의 만남은 순항훈련의 또 다른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에게 대한민국 해군의 방문은 큰 기쁨이자 자부심이고, 우리에게도 그분들의 존재는 따뜻한 힘이 됩니다. 이 만남은 군이 국방집단을 넘어 국가의 품격을 드러내는 외교적 닻임을 보여 줍니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이 경험의 밑바탕에는 ‘함께 있음’이 놓여 있습니다. 배 안에서 서로 다른 전공과 특기를 가진 장병들이 같이하고, 해외에선 다른 문화와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교류하고, 곳곳에서 만난 교민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우리는 차이를 이해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시야는 넓어지고, 세계를 보는 관점도 깊어집니다. 이는 군 생활뿐만 아니라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순항훈련을 마치고 다시 모항으로 돌아오는 순간, 우리에게 남는 것은 단순한 항적이 아닙니다. 함께 먹고 자고 훈련하며 견뎌 낸 시간, 서로의 성장과 변화, 작은 갈등과 고단함까지 한데 엮여 ‘함께 있음’의 의미를 두텁게 만들어 줍니다.

군 생활은 늘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시간입니다. 순항훈련은 이 2가지를 동시에 경험하며 장병 각자에게 세계를 향한 새로운 관점을 선물합니다. 우리가 지키는 바다와 우리가 만나는 세계는 하나의 연속선 위에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실어 나르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바다는 늘 같아 보이지만, 파도는 매 순간 다르게 다가옵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어떤 파도가 밀려와도 함께 있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균형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순항훈련이 우리에게 남긴 연대와 성찰, 세계를 향한 열린 시선이 앞으로의 군 생활과 인생의 항해에서도 든든한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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