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당시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교수님들 역시 지상파에 입사한 선배들을 불러 특강을 하곤 했다.
한번은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던 드라마의 PD가 강단에 섰다. 비전공자들까지 몰려와 강의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의 특강은 지루할 새가 없었다. 드라마의 비하인드, 현장 에피소드 등이 적절한 유머와 함께 쏟아졌다. 특히 남자 주인공의 ‘까칠함’을 보여 주는 이야기는 강의실을 몇 차례 폭소로 몰아넣었다. 문제는 그 뒷이야기들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PD가 농으로 던진 “그 형이랑은 다시는 작품을 못 한다”는 말조차 ‘진지충’답게 그대로 믿어 버렸다.
그 후 20년간 그 배우에게 왜곡된 인상을 품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를 좋지 않게 평가한 적도 여러 번 있다. 시간이 흘러 그 PD와 배우가 다시 호흡을 맞춘 작품이 흥행하고, 그 배우 특유의 까칠함과 솔직함이 매력으로 받아들여지며 사랑받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때 PD가 한 말은 우리가 친한 친구를 두고 농담 삼아 하는 ‘우스개’에 가까웠다는 것을. 그저 편한 자리에서 나온 얘기일 뿐 누군가의 인성을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없는 말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혼자 그 배우를 오해하고 멀리했던 지난 20년이 괜스레 미안해졌다.
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좁다. 더군다나 군대나 회사처럼 관계망이 촘촘한 곳에선 말 한마디가 갖는 파급력이 크다. 누군가에 관해 무심코 던진 한마디 평가가 그 자리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또 다른 이에게 확산되며 어느새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는 낙인이 돼 버린다. 더 큰 문제는 그 정보의 출처가 ‘나’라는 사실이 사라진 채 평가만 혼자 살아남는다는 점이다. 최초의 말은 농담이었는지, 상황이 어떤지, 맥락은 무엇이었는지는 사라지고 ‘그 사람은 까칠하다더라’라는 단편만 남는다.
그 단편적 평가는 해당 당사자의 인간관계, 업무 기회, 평판에 실질적 피해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한 사람에 대한 인식은 그가 아닌 ‘주변의 말’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법이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이유는 이런 말의 파급력을 고려해서이지 않을까 한다. 명예란 추상적이면서도 개인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권리다. 사실 여부가 불명확한 평가나 소문은 한 사람의 사회적 신용을 훼손하고 관계와 기회를 앗아 갈 수 있다.
법은 사람의 평판을 “개인의 존엄과 사회적 생존을 지키기 위한 자산”으로 본다. 그래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도 그것이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면 처벌 대상이 된다. 거짓말뿐만 아니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필요한 공개로 타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경우라면 법적 책임을 인정한다.
우리는 흔히 ‘이 정도 말은 괜찮겠지’라며 가벼운 평가를 던진다. 하지만 그 말이 누군가의 이미지가 되고, 누군가는 그 말 때문에 기회를 잃고 관계를 맺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조직에선 한 사람의 평판이 업무 능력이나 인사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말 한마디의 책임은 생각보다 무겁다. 우연히 타인을 통해 받은 인상 하나로 누군가를 오해하고 또 그 오해를 주변에 전해 왔으나 더 이상 남의 말로 쉽게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가십의 확산 과정을 봤고, 그 피해가 생각보다 크다는 점도 깨달았으며, 사람이란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다는 것 또한 이제는 알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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