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함께하는 전쟁사
나폴레옹의 퇴위, 온 유럽이 축제 분위기
나폴레옹 맞서 승리한 대불 동맹국
자축 예술작품 창작 요구도 늘어나
연합군 블뤼허 장군 파리 입성하자
베토벤, 獨 찬양 ‘게르마니아’ 작곡
청각 거의 잃었을 때 작품 더욱 특별
교향곡 9번 합창 속 ‘환희의 송가’
장애에도 꺾이지 않은 위대한 도전
인류 평화 기원하는 메시지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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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동맹군의 승리, 베토벤도 음악에 담아
1814년 4월, 전쟁 패배의 책임을 물어 나폴레옹의 퇴위가 결정됐는데 이는 곧 유럽 대불동맹국의 승리를 의미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승리를 자축하는 예술작품에 대한 요구도 높았다. 오스트리아나 프로이센(독일)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베토벤의 조국 프로이센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음악에 대한 요구가 자연스러웠다. 베토벤도 독일의 우화인 ‘게르마니아’를 소재로 독일을 찬양하는 ‘게르마니아’를 작곡했고, 1814년 4월 11일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초연했다. 모두 다섯 구절의 가사가 독창과 합창으로 노래되는데, 4분 남짓 연주된다. 노래 가사 중 1구절과 5구절의 내용을 보면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많이 강조하고 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게르마니아, 게르마니아 / 너는 지금 밝은 빛 가운데 서 있다 / 안개가 네 머리를 에워싸고 / 옛 태양은 훔쳐간 듯했지만 / 신, 주님이 너를 도왔다 / 그는 찬양받으실 것이요 / 게르마니아, 너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 게르마니아, 게르마니아, / 너는 어떻게 영원히 서 있는가. / 모든 개인에게 어떤 욕망이 생각됐는가. / 누가 그것을 하나로 모았는가? /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황제 - 승리! / 그는 찬양받을 것이요, 게르마니아 / 너에게 경의를 표하라
1814년 3월 31일 프로이센 장군 블뤼허가 연합군의 수장으로 파리에 입성하자 당시 빈은 축제 분위기가 됐다. 축하를 위해 음악 행사가 계획됐는데, 전체적인 대본은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트라이치케에게 맡겨졌고, ‘The Good News’라는 단막극을 구성했다. 험멜(Hummel)의 서곡과 4중주, 이중창 및 합창단과 기로베츠(Gyrowetz)와 브루노(Bruno)의 아리아, 칸네(Kanne)의 합창단과 함께하는 가곡, 웨이글(Weigl)의 트리오 등이 포함됐다.
베토벤은 축하 행사의 마지막 곡을 작곡했다. 4월 빈에서의 이 연주는 어찌 보면 베토벤의 실내악 음악회 중 마지막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베토벤은 30세가 되는 1800년부터 청각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시기부터는 거의 듣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1814년의 연주는 아주 특별했다.
베토벤, 비극적 운명을 불굴의 의지로 승화
베토벤의 삶과 음악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보자. 그는 독일 본에서 태어나 22세 되던 해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간 후로는 줄곧 그곳에서 생활했다. 당시 빈은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음악의 중심에 있었다. 베토벤은 빈에 간 후 하이든에게서 음악공부할 기회를 얻었으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모차르트와도 한두 차례 만나기는 했으나 계속 이뤄지진 않았다. 1800년 ‘1번 교향곡’과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는데, 이게 크게 성공하면서 비로소 빈의 음악계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 이미 그의 귀는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고 있었다. 일종의 이명 현상처럼 소리가 나고 청각이 점점 쇠약해져 갔으나 그는 이걸 비밀로 했던 것 같다. 1802년 그의 유언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1802년 ‘2번 교향곡’, 1803년 ‘감람산의 예수 그리스도’를 작곡했다. 특히 1804년의 3번 교향곡 ‘영웅’과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 소나타 Op. 53’은 기존 틀에서 벗어나 훨씬 크고 장대한 음악을 만듦으로써 음악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 후 약 10년간은 그의 음악의 가장 열정적인 시기였다. ‘에그몬트 서곡’, 5번 교향곡 ‘운명’, 6번 교향곡 ‘전원’ ‘피아노 협주곡 4번’과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바이올린 협주곡’ 등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음악이 탄생했다. 1810년대부터는 청력이 더 나빠져 사람들과의 사교보다 혼자 독서와 사색을 즐겼다고 한다. 빈 교외의 시골 마을에 머물면서 호메로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물론 칸트 철학에 심취했고, 괴테와 실러의 작품에 빠지면서 음악적 심오함이 더해졌다. 오스트리아 황제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장엄미사’나 9번 교향곡 ‘합창’, ‘피아노 소나타 17번, 29번’ 등은 청각이 완전히 상실돼 필답으로 대화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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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교향곡은 신이 인류에게 주는 메시지
특히 9번 교향곡 ‘합창’은 1817년 본격적으로 시작해 1823년 완성된 것으로, 4악장에 실러의 시를 바탕으로 합창 ‘환희의 송가’를 넣었는데, 당시 빈의 음악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형식이다. 물론 교향곡에 합창이 들어간 예가 나폴레옹 전쟁기 프랑스 작가들에 의해 시도는 됐으나 전해지는 악보도 없고, 그들이 공연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고 한다. 청각이 상실된 상황에서 정형화된 형식의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합창을 넣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새롭게 시도하는 합창을 들을 수 없었을 텐데도 우리에게 합창을 통해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선물했다.
1824년 5월 7일 빈에서 ‘합창’ 교향곡 초연이 있었을 때, 베토벤의 요청으로 2개의 포디움과 2명의 지휘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휘자들은 베토벤과 또 한 명의 지휘자를 보면서 연주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청중은 우레같은 박수를 보냈지만 그는 듣지를 못했고, 테너 가수가 그를 뒤돌아보게 했을 때 비로소 감격했다고 한다.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수많은 저항과 갈등을 동반한다. 특히 귀가 들리지 않은 상황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갖고 두려움 없이 새로운 형식의 교향곡을 만들어낸 베토벤은 신이 인류에게 준 귀한 선물임이 틀림없다. 그를 존경해야 하는 이유다.
유럽 정상 모인 자리서 ‘영광의 순간’ 초연
1814년 동맹군의 승리와 파리 입성을 축하하는 베토벤의 음악이 하나 더 있다. ‘영광의 순간(Der Glorreiche Augenblick). Op. 136’이라는 칸타타다. 1814년 빈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를 수습하기 위한 회의가 개최됐다. 당시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인 메테르니히(1773~1859, 훗날 오스트리아 총리)가 주도했는데, 회의에 참석한 유럽 정상을 위한 행사용으로 작곡한 곡이다. 가사는 베토벤의 친구 바이센바흐(Aloys Weißenbach)의 시를 기초로 했으며, 6악장으로 구성됐다. 두 명의 소프라노, 테너와 베이스 독창, 합창, 관현악 등이 연주된다. 승리를 축하하는 곡이라 우렁차고, 때로는 격정적이며, 영광의 순간을 상기시키고 재현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곡은 1814년 11월 29일 빈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유럽 정상들이 모인 가운데 초연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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